성주 참외·북성로 공구…“모양도 맛도 재미있는 빵, 명물 되겠죠”

  • 이현덕,손선우,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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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5 07:30  |  수정 2017-03-25 09:32  |  발행일 2017-03-25 제6면
위기 속에서도 성공 이끌어낸 대구·경북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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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참외찐빵을 개발한 방민주씨 부부는 ‘웃음가득찬’이란 상호명처럼 하루 종일 웃으면서 찐빵을 만든다. 방씨는 “군민들이 이곳에 와서 웃음을 되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참외로 유명한 성주는 지난해 7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결정으로 위기를 맞았다. 사드가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함과 동시에 참외 생산 기반을 파괴해 지역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성주 참외(전국 참외 생산량의 75%)의 시세는 평소 가격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삶터를 잃을 위기에 처한 주민들은 9개월째 사드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에서 처가인 성주로 내려와 참외찐빵을 만들며 평화로운 성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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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공구빵’ 개발자 최현석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과 차갑고 딱딱한 공구를 조합했다”며 몽키스패너 모양의 빵을 들고 웃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한때 국내 거의 모든 공구가 모였다고 할 만큼 전성기를 누렸던 북성로는 신도심에 밀려 위기를 겪고 있다. 북성로 공구골목의 영화는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예전만 못해진 데다 불황 탓에 골목을 가득 메웠던 공구상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그저 도심의 쇠락한 골목 중 한 곳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북성로를 상징하는 볼트와 너트, 몽키스패너 등 공구를 빵에 접목시켜, 한산해진 북성로에 활기를 되찾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이 두 청년은 악조건 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상품화하거나 상권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다.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위기가 기회’라고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성주 참외찐빵 개발 방민주씨
귀농 3년차 실패 거듭하던 부부
사드배치 계기로 아이디어 얻어
주민 사랑방…하루 300개 팔려

북성로 공구빵 개발 최현석씨
목공방 운영하던 대구 예술학도
공구 모양 마들렌 3가지 만들어
“흙수저도 성공가능 보여주고파”


◆위기를 기회로 삼은 ‘성주참외찐빵’

지난 1일 오전 10시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시장. 성주특산물판매장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조리대에서 밀가루 반죽을 만들던 방민주씨(39)에게 말을 걸었다. “찐빵 있어요?” 방씨는 “반죽을 발효 중인데, 찌려면 아직 멀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윽고 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건넨 후 다시 바쁜 손놀림을 이어갔다. 첫 찐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판매장에 모여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방씨는 “이곳이 성주군민들의 사랑방”이라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방씨는 아내 김미영씨(37)와 함께 성주특산물판매장에 매일 출근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웃음 가득찬’으로 이름 붙인 ‘성주참외찐빵’을 만드는 것이다. 방씨가 개발한 이 찐빵은 직접 쑨 팥 앙금과 견과류, 참외효모종을 사용한다. 찐빵 반죽 겉면에 노란색 단호박 가루를 뿌리고 칼집을 내 참외 모양을 낸다. 방씨 부부는 오전 7시쯤 가게에 나와 하루 200~300개의 찐빵을 만드는데, 늦어도 오후 6시쯤이면 다 팔려나간다. 가격은 개당 1천원이다.

“저는 전형적인 귀농 실패자 중 한 명이었어요. 성주에서 적응하지 못한 탓이죠. 그런데 사드 문제가 터지고 나서 가게를 내게 됐어요. 어찌 보면 사드 수혜자라고 볼 수 있어요.”

서울에서 태어난 방씨는 2004년 10월 김씨와 결혼해 경기도 수원에 정착했다. 10년 동안 수도권에서 살던 그는 2014년 7월 돌연 아내의 고향인 성주로 내려왔다. 경쟁에 치이는 삶에 지쳐 고향에서 농사를 짓자는 아내의 뜻이었다.

하지만 귀농은 예상을 빗나갔다. ‘서울사람’으로 구분된 방씨는 성주군민들과 어울리지 못해 3년 가까이 은둔형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드 배치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외톨이였던 방씨는 이내 주민들과 친해졌고, 비슷한 또래의 성주 토박이 주민들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 그는 “촛불집회를 할 때도 항상 한발짝 물러서서 지켜만 봤는데, 어느새 손을 내밀어주더라”고 했다.

방씨 부부는 성주참외찐빵을 지역의 명물로 만든 뒤 마을공동체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방씨는 “찐빵을 찾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사업을 키워, 사드가 망친 성주를 되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 김씨는 “성주에선 9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모두 지쳐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활력소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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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석씨가 개발한 북성로 공구빵. 볼트와 너트, 몽키스패너 등 3가지 모양의 마들렌이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북성로에 활기 찾아줄 ‘공구빵’

“아직 개발단계인데 이게 기삿거리가 되는지….”

지난 2일 만난 최현석씨(34). ‘북성로 공구빵’의 개발자로 유명해져 지난달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했지만 아직도 언론이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최씨는 최근 문화콘텐츠의 산업화를 돕는 ‘대구콘텐츠코리아랩’이 대구 대표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공모전에서 12대 1의 경쟁을 뚫고 3위를 차지했다. 지역을 홍보할 수 있는 문화 관광상품 콘텐츠로 떠올랐다. 고무적인 사건이지만 정작 본인은 무덤덤한 편이다. 그는 “아직 가게를 낸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북성로 공구빵은 목공방을 운영하는 최씨가 북성로 공구골목을 드나들다 얻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70년의 역사를 지닌 공구골목에서는 400여개의 업체가 각종 산업용 공구를 판매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구 최대 산업공구 골목으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다. 최씨는 공구 모양의 빵을 만들면 쇠락한 북성로를 활성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최씨는 “빵은 아무래도 길거리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나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인들과 대화하던 도중 나온 아이디어가 빛을 보게 된 건 마침 대구콘텐츠코리아랩에서 연 브랜딩 프로젝트 공모전 덕분이다. 최씨는 북성로에서 유일한 비철금속주물집 ‘선일포금’과 협업해 몽키스패너와 볼트, 너트 등 세 가지 모양의 빵틀을 만들었다. 지인인 쇼콜라티에 이나희씨(여·31)의 조언을 얻어, 빵의 종류를 작은 카스텔라의 일종인 마들렌으로 정했다. 최씨는 “보통 관광지에 가면 지역의 특색을 녹인 음식을 내놓는데 맛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양도 재미있고 맛도 있는 빵을 만들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계명대 패션마케팅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공예디자인을 공부한 예술학도다. 2012년 대학을 졸업한 뒤 예비사회적기업에서 활동하며 북성로에 버려지는 목재 팰릿을 주워 예술품으로 재생하는 일을 했다. 예술가와 컬래버레이션하는 아트퍼니처 제작활동도 펼쳐왔다. 하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최씨의 꿈은 제품 개발을 확대해 북성로에 공구빵 가게를 내는 것이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수저 계급론으로 따지자면 ‘흙수저’에 해당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니라도 성공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또 북성로 공구빵을 대구 대표 특산품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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