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말 형상 공예품 제작 이규철씨

  • 유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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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5 07:16  |  수정 2017-03-25 09:36  |  발행일 2017-03-25 제10면
土馬에 빠진 공예가 “상품화해 영천 대표브랜드 만들고 싶다”
20170325
영천 자양면 공예촌에 입주해 지역 관광문화 콘텐츠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규철씨가 제작한 토마의 특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천의 명산인 기룡산의 토마(土馬) 이야기를 아시나요.”

말(馬) 형상의 공예품을 제작하고 말 관련 이야기를 엮어 지역의 관광문화 콘텐츠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규철씨(52). 그는 말의 도시 영천에 설립된 전국 유일의 말 공예촌을 천년을 이어갈 지역 대표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싶어한다. 외가가 영천인 그는 2014년 영천 자양면 공예촌에 들어와 현재 말을 주제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스토리텔링 작가로 변신 중이다. 아울러 공예촌 입주 작가와 함께 찰흙으로 말을 빚어 각종 캐릭터 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다.

1년6개월간의 수많은 밤샘작업 속에 태어난 공예품은 토마(土馬)다. 각양각색의 문양을 입히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미했다. 그는 “토마를 활용한 장식용품, 액세서리, 시계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상품화해 말산업특구 영천을 알리고 산업화로 연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토마가 만들어지기까지는 7일가량 소요된다. 석고틀에 찰흙물을 붓고 모형을 뜬 뒤 1천~1천100℃에서 24시간 초벌구이를 거친다. 초벌 소성 후 유약을 바르고 다시 같은 온도에서 하루 정도 불을 지핀다. 마지막으로 문양, 전사필름 작업을 마친 후 800℃에서 소성하면 완성된다.

전국 유일 말 공예촌에 입주
공동으로 상표권·저작권 등록
토마이야기 콘텐츠 개발 몰두
“액세서리 등 장식용품 상품화
지역 대표브랜드로 만들고파”


이씨는 이렇게 제작한 토마에 가리온(재물의 행운), 수치(건강한 힘), 미르(꿈과 용기), 단미(아름다운 그녀), 아라(포용의 마음), 그린비(그리운 사람), 이든(선한 마음), 나래(헌신과 교감), 시밀레(영원한 친구), 느루(느림의 지혜), 다솜(맑은 사랑), 마루(희망의 힘) 등 12가지 이름을 붙였다. 그는 “토마와 토마 이야기를 통해 절망하고 좌절하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건강·행운을 전해주고 싶다”며 “토마가 널리 알려져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으면 더욱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영천 공예촌에 입주해 토마 제작과 토마 이야기라는 문화콘텐츠 개발에 몰두하게 된 동기는 엉뚱하게도 퇴사·부도·파산으로 이어진 인생사에서 시작됐다. 상고 졸업 후 증권회사에 다닌 그는 10여년 만에 첫 위기를 겪는다. 주가가 1,000포인트 때 입사해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200포인트로 떨어졌을 때 퇴사한, 자칭 ‘쪽박 찬 사나이’였다. 이후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꾼으로 변신해 돈을 좀 모았지만 외국 유명브랜드 총판, 개인회사 운영 등을 하면서 부도를 맞았다.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그는 교훈 하나를 얻었다며 결코 밑지는 장사, 밑진 인생은 아니었다고 했다.

“좌절요? 왜 안 했겠습니까. 나도 사람인데…. 하지만 사업하면서 교훈도 얻었습니다. 개성 있고 독창적이며 역사가 숨 쉬는, 스토리가 있는 제품은 반드시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가 비즈니스 모델로 삼은 것은 스웨덴의 상징인 나무로 만든 민속 공예품 달라호스(Dala Horse)다. 고유 번호와 작가의 서명이 새겨진 채 전 세계에 매년 수만개가 판매되고 있는 달라호스는 스웨덴 북부 실리안 호수 옆에 위치한 작은 도시 누스나스(Nusnas)에서 4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달라호스는 스웨덴을 찾는 관광객이면 한 번쯤은 구입하게 되는 관광상품이 됐고 누스나스도 덩달아 유명 관광지로 부상하게 됐다.

이씨 역시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공예촌 작가와 전문 교수가 함께 제작한 토마는 지난해 상표권 및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 이씨는 인터뷰 말미에 토마의 탄생 배경과 관련해 자양면 하절(자연부락)의 충노 억수의 묘에 얽힌 이야기를 토대로 스토리텔링한 토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사진=영천 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스토리텔링-기룡산 토마 <요약>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미르’는 마을 부잣집 마구간 일을 거들며 살았다. 말 중에는 유난히 부자(父子)를 잘 따르던 어린 말이 있었다. 부자는 넓은 땅을 마음껏 뛰어다니라는 뜻으로 ‘마루’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느날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아버지와 마루는 나란히 전쟁터로 나갔다.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는 미르에게 ‘내가 보고 싶을 때는 진흙으로 말을 빚으라’고 당부했다. 몇년 후 전쟁이 끝나고 전장에 나갔던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아버지는 가장 힘든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위된 장군을 구하기 위해 마루와 함께 적진에 뛰어들었고, 이를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르는 아버지와 마루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움막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토마를 계속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열두마리가 탄생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자 마을사람들이 움막을 다시 찾았다. 토마들은 투박했지만 문양이 곱게 입혀져 있었고 각각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토마들 사이에서 미르가 영원히 잠들어 있었다.

미르의 이야기는 마을과 마을을 지나 온 나라에 퍼졌다. 사람들은 미르가 만든 토마를 나누고 전하면서 미르와 아버지, 그리고 마루를 오래도록 기억했다. 토마는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고 꿈, 희망, 용기, 충성, 사랑을 상징하게 됐다. 토마는 자신만의 이름을 얻고 온 세상 사람에게 다시 빛나는 선물로 되돌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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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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