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태생부터 다르다? ‘性’ 고정관념을 깨트리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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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5   |  발행일 2017-03-25 제16면   |  수정 2017-03-25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남성과 여성을‘이분법적’으로 분리
일반 대중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켜온
진화심리학의 시대착오적 사고 비판
과학으로 포장한 男 우월주의의 폭로
20170325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비판한 책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꽤 진보했다고 여기는 이 시대에도 철저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터무니없고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근거와 논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하면서 그 믿음을 일반 대중에게 끊임없이 설득하려고 애쓴다.

저자 마리 루티는 여전히 진행 중인 진화심리학의 시대착오적 관계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비롯해 젠더 관계의 구질서를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진화심리학이 개선해야 할 방향,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이 때로는 터무니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비전문가인 대중이 진화심리학 논리에 어떻게 현혹되는지, 진화심리학 서적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게다가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 목표나 그들의 담론보다 그들이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들에게 무슨 내용을 전달하는가에 방점을 둔다.

1992년 존 그레이의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뒤로 자기계발서 전문가들은 남녀가 심리적·감정적·성적으로 엄청나게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남녀 관계 문제들은 서로의 성 특이적인 욕구·강점·속성·혼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는 신념을 고수해왔다.

남녀를 떠나 개개인이 겪은 경험치의 차이, 유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개인이 자라면서 내면에 축적된 성장의 역사 등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들은 오직 ‘남녀’라는 성만이 관계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성 소수자들을 일컬어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해 주류 사회로부터 탈락한 존재라고 비하했다.

남녀 관계에 관한 진화심리학 분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근거 없는 성 고정관념을 과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중에게 납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퍼진 이론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도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대중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 양 아무런 비판 없이 수긍하고, 태생적으로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고 받아들인다.

20170325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동녘사이언스/ 304쪽/ 1만8천원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의 큰 틀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들이 지지하는 것은 남성우월주의의 가부장제 사회이며,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이론을 퍼뜨린다. 여성이 반복해서 당하는 성차별은 그들의 이론이 과학이라는 미명을 등에 업은 채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성 차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여전히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여성들을 억압하는 장애물이 실제로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연애 관계 문제를 비롯해 집안에서도 여성이 대등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이러한 허구에 의한 인식의 지배임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뿌리 깊게 체화된 여성성과 남성성은 페미니즘 담론이 한껏 격양된 오늘날까지 우리의 행동양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자기계발서 저자들과 잡지 칼럼니스트들이 강조하는, 여자는 자고로 비싸게 굴어야 한다는 개념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바로 빅토리아 시대 도덕에 홀딱 반한 진화심리학자들이다.

저자는 그들이 말하는 성 차이에 대한 결정은 그 자체가 이미 이념적이라고 진단한다. 지식 생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세운 가설은 그 주제를 어떤 틀로 바라보고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조건화됨을 알 수 있다. 지식 생산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도 그렇다. 진화심리학은 젠더와 성에 대한 지배적 사회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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