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직업의 귀천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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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5   |  발행일 2017-03-25 제23면   |  수정 2017-03-25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직업이든 귀하고 천함이 없어 동등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과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최고의 직업은 의사, 판·검사, 변호사 등 일명 ‘사’자가 들어간 화이트칼라와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사’자가 아닌 교사, 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등 공무원직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자신이 가진 소질이나 적성, 꿈을 이루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10여년 전까지 대표적 기피 직업으로 손꼽히던 환경미화원의 인기가 갈수록 치솟는 것은 직업 귀천 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고된 직업의 대명사였던 환경미화원의 인기는 ‘고시(考試)’란 말까지 생길 정도다. 구미시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3일까지 환경미화원 고시(공채) 응시원서를 접수한 결과, 21.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원자들의 학력은 대졸 99명(41%), 고졸 131명(55%), 중졸 이하 9명(3.8%)이다. 여성 응시자도 10%인 24명이나 됐다. 환경미화원 고시에 재·삼수는 기본이고, 응시자의 절반 이상은 20~30대 청년이었다. 이직을 희망하는 대기업 과장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생, 육군장교 출신까지 이력도 다양했다. 환경미화원 고시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정년과 복지가 보장되는 장점이 젊은이들의 입맛을 당기게 만들었지만, 국가 교육정책과 직업 사이에 발생한 미스매칭의 하나로 생각된다.

3D(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직업의 대명사였던 환경미화원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으로 바뀐 것은 정말 다행스럽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더 이상 회자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한 것도 참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직업 선택의 기준이 그 사람이 가진 자질과 능력이 아니라는 점과 오로지 공무원직에만 매달리는 현실은 안타깝다. 오로지 공무원직에만 목을 매는 사회를 만든 낡은 행정가와 정치인들의 머리를 한번쯤 쥐어박고 싶을 정도다. 환경미화원 고시의 뒤편에는 취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고뇌(苦惱)가 태산보다 높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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