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글을 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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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7 07:46  |  수정 2017-03-27 07:46  |  발행일 2017-03-27 제15면
[행복한 교육] 글을 쓴다는 것은
장성보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주흥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을 만들었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얘지고, 집에 돌아와서는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죽을 때까지 마음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고 한다.

사령운은 반나절 동안 시 100편을 지었는데, 갑자기 이 열두 개가 빠져 버렸다. 또한 맹호연은 고민하면서 시를 짓다가 눈썹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위상은 ‘초사’ 일곱 권을 저술하고 나서 심장의 피가 모두 말라 끝내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글로써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술로 몸을 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수광 ‘지봉유설’ 저술(著述).

선인들처럼 이 열두 개가 빠져나가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얘질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역작은 가당치도 않고, 겨우 A4용지 한 장에 주절주절 두서없이 쓰는 글이지만 3주마다 한 번씩 글을 써낸다는 것은 꽤 큰 부담이다. 원고 마감일이 가까워질수록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일상을 짓누르는 힘이 상당하다.

오늘도 책상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데 제주 해녀가 물질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쳤다. “미역 따는 게 더 쉽지 않을까” 동정이라도 얻을까 싶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분명하지 않은 주제로, 막연하게 뭔가를 쓴다는 것은 바다에서 소라·전복을 따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중국의 문장가 심약은 “문장을 쓸 때는 세 가지 쉬운 방법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재, 알기 쉬운 글자 그리고 읽기 쉬운 문장이 바로 그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이 세 개의 조합이 만만치가 않다. 소재와 글자와 문장은 지천으로 깔려 있지만 이것들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날마다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듣는 말,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하는 생각이 곧 글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것들은 글을 쓰면서 하나로 묶인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며 그것은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신문 한 자락에 실리게 되면서 시작한 글쓰기가 햇수로 4년이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나 처음 보는 이나 다들 첫인사가 “글 잘 읽고 있다”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깜짝 놀란다. 기껏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을 깊은 생각도 없이 책상물림으로 쓴 글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봐왔다는 사실이 아찔하다. 옛사람들처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독서에 힘쓰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널리 보고 듣고 깨달은 뒤에 그것을 헤아려 표현했다면 아쉬움이 없을 텐데 부끄럽기 그지없다.

장기도 없이 재주를 부리려다 보니 매회 문장이 길어진 것도 아쉽다. 이번 글도 마찬가지, 주절주절 산만하다. 연재를 마치는 지금까지도 글을 쓴다는 것을 잘 모르는 어리석은 나를 위해 조지프 퓰리처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조지프 퓰리처-
장성보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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