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국민은 ‘소통 대통령’을 원한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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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7   |  발행일 2017-03-27 제31면   |  수정 2017-03-27
[월요칼럼] 국민은 ‘소통 대통령’을 원한다
박규완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 헌정사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고, 리처드 닉슨은 미국 유일의 탄핵 대통령이다. 두 탄핵 대통령은 묘하게도 ‘불통’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불통의 아이콘이 됐지만, 닉슨도 이에 못지않았다.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대면보고보다 서면보고를 선호했다는 점이 박 전 대통령과 판박이다. 국무회의 때 치열한 토론이 없었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이준식 교육부총리는 1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불통 스타일을 웅변하는 단적인 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소통(疏通) 대통령’으로 꼽힌다. 오바마는 8년 재임 동안 총 158회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연 평균 20회다.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매년 연초의 신년 회견이 거의 전부다. 그것도 대개는 질문 내용이 미리 정해진다. 당연히 기자들의 신랄한 질문도 없다. 각본 없이 진행되는 백악관 기자회견과는 질과 농도(濃度)가 다르다. 오바마는 한 시간 넘도록 기자와 즉문즉답을 하고, 타운홀에서 전문가들과 건강보험 및 기후변화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퇴임식에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단련시켰다”고 술회했다.

오바마는 야당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건강보험개혁법 ‘오바마케어’를 관철시키기 위해 공화당 의원에게 일일이 전화를 한 사실은 잘 알려진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은 야당의 법안 발목잡기를 힐난했지만 야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한 적은 없다. 국정의 성공을 바라는 통치자라면 국민은 물론 야당과 소통하고 이념성향이 다른 진영과의 대화 채널도 열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담을 쌓았고 반대세력에겐 블랙리스트라는 멍에를 씌워 배척했다.

세종도 ‘소통의 군주’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사대부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에 어긋나고, 이미 이두가 존재해 쓸모가 없으며, 중대한 국사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한글 창제를 반대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세종은 화를 내거나 강압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반론을 펴고 설득해 나갔다. 세종은 훈민정음 반대론자들의 논리가 빈약함을 지적하고, 문맹 퇴치와 개화를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문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통해 결국 훈민정음 반포에 성공했다. 세종은 평소 신료에게 직언을 주문했고 토론과 대화를 통해 정책을 입안했다. 백성과 교감하고 신하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한 세종의 통치는 왕정이라기보단 공화정에 가까웠다.

병법의 달인 손자도 “소통이 전쟁의 승패를 가름한다”고 일갈했다. 손자는 군마가 뒤엉켜 피아(彼我) 구분이 어려운 전장(戰場)에서는 북과 징 같은 것으로 군사들의 귀를 통일시켜야 하며, 깃발과 신호를 통해 시각적 의사소통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주의 불통은 참모들의 양봉음위(陽奉陰違), 비선실세 발호, 공적 이성의 상실, 법과 제도의 무력화를 촉발한다. 박 전 대통령과 닉슨은 불통 통치의 폐해가 얼마나 큰가를 탄핵으로 실증했다. 이제 더는 ‘불통 대통령’의 참담한 귀결을 보고 싶지 않다. 19대 대선은 누가 집권하더라도 국회의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구도다. 협치와 연정이 불가피하다. 그러기에 19대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1호는 당연히 ‘소통’이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야당 의원에게 수시로 전화하고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국민과의 교감도 중요하다. 소통하지 않으면 다양한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민심을 헤아려내지 못한다. 소통 않는 정부 정책이 국민중심적일 수는 없다. 통치자와 국민, 통치자와 참모, 참모들 간에 대화의 물줄기를 틔우고, 당·청·정 간에도 소통의 궤도를 깔아야 한다. 국가도 기업도 가정도 소통해야 길(吉)하고 형(亨)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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