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정불아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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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30   |  발행일 2017-03-30 제31면   |  수정 2017-03-30

한비자(기원전 280∼233년)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법가(法家) 학파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그는 비록 말더듬이였으나 두뇌가 명석하고 글을 잘 썼다고 한다. 한비자는 제왕의 통치술과 법치의 중요성 등에 관한 책을 많이 썼는데, 이를 읽게 된 진시황은 큰 감명을 받아 그를 발탁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비자는 진시황의 책사가 되지 못했다. 동문수학한 ‘절친’ 이사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비록 한비자는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만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한 그의 사상과 철학은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검찰 수사와 관련해 법조계에서 한비자의 가르침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3일 퇴임식에서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법지위도전고이장리)는 한비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는 그가 밝힌 대로 대통령 탄핵의 고통이 크지만, 헌법과 법치를 통해 민주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란 뜻으로,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도 한비자의 열혈 팬인 듯하다. 그는 2015년 취임식 때와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비자를 언급하며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법불아귀(法不阿貴)를 즐겨 인용했는데,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본인의 소신을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비자는 모략가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두’편에서 나라를 좀먹는 다섯 부류를 열거하고 있는데, 현 시대에 맞게 해석하면 △명분을 앞세워 이익을 얻는 정치가 △출세를 위해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돈으로 지배층에 빌붙는 간신 같은 자 △무력으로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 △노동자(국민)의 이익을 빼앗는 특권층 등이다. 시대가 많이 흘렀지만 이번 국정농단 게이트를 보면 한비자의 혜안이 새삼 돋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는 법보다 정치가 더욱 문제다. 권력에만 아부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게 정치의 한 단면이다. 우리 사회에 법불아귀와 함께 정불아귀(政不阿貴)가 필요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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