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그 많던 TK 보수표는 어디로 갔을까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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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3   |  발행일 2017-04-03 제30면   |  수정 2017-04-03
朴 구속되며 보인 민낯, 노쇠한 보수의 참모습 그대로는 아닐까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젊음·활기 다시 찾아야
[송국건정치칼럼] 그 많던 TK 보수표는 어디로 갔을까

3월31일 새벽 3시3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10층에 마련된 임시대기실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영장 발부’를 통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리에 앉은 채 10분가량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화장실로 갔다. 직접 폼클렌징으로 화장을 지우고 ‘올림머리’에 사용한 머리핀을 하나 둘씩 뽑았다. 새벽 4시29분. 검찰 관용차 K7이 서울중앙지검 청사 지하주차장 입구를 빠져나왔다. 차량 뒷좌석에 ‘피의자 박근혜’가 여성 수사관 2명 사이에 체념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색조화장이 지워진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이마와 어깨로 흘러내려 있었다. 큰 영애→퍼스트 레이디→은둔생활→정치인→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국민 앞에 처음 보인 ‘민낯’이었다. 그냥 환갑을 훨씬 넘긴 65세 초로(初老)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늙어버렸다”는 말을 많이 했다. 오랫동안 ‘정치인 박근혜’를 취재해온 필자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도 다가왔다. ‘인간 박근혜’의 불행한 인생은 일단 개인사로 치고 접어두면, 그 다음에 남는 건 뭘까. 아마도 ‘보수의 방황’ ‘보수의 상실감’을 지나 ‘보수의 노쇠’ 아닐까. 심하게 말하면, 색조화장과 올림머리로 감췄던 보수의 민낯이 드러난 데 대한 자괴감이라고나 할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 정부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보수는 갈 곳을 잃었다. 어느 여론조사에선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는 응답이 37.3%에 불과했다. 실제로 당시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은 51.6%였다. 14%포인트가량이 증발해 버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여론조사를 보니까 87명만 보수우파라고 대답했다. 여론조사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했다.

이런 결과를 ‘샤이(shy) 보수’의 존재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현 상황이 부끄러워서 숨어버린 보수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조기 대선 정국에 본격 들어섰음에도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만 해도 그렇다. ‘리얼미터’의 3월 5주차 조사에 따르면 TK지역에서 보수후보인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3.2%, 자유한국당 홍준표 의원이 19.0%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갤럽’ 조사에선 유승민 2%, 홍준표 8%였다. 만일 아직도 보수표가 숨어 있다면 ‘지지후보가 없다’거나 ‘유보한다’는 응답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높아야 하는데, 그런 경향도 찾을 수 없다. 대신 TK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 선두이고, 같은 당 안희정·이재명 후보가 의미있는 지지를 받는다. ‘중도’로 분류되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TK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국 지금 시점에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과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보수표가 숨어버린 게 아니라 진보나 중도로 넘어가 버렸다고 보는 게 이성적 판단이다. 그동안 보수 정치인들은 이처럼 수치로 나타나는 냉엄한 현실도 외면했다. 그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고, 급기야 쇠고랑 차고 구속되는 장면이 연출되면 보수가 결집할 것이란 정치공학적 계산만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끝을 보면서 국민들은 오랫동안 감춰졌던 박 전 대통령의 민낯뿐만 아니라 노쇠한 보수의 속살도 함께 목격했다. 이번 대선을 통해 과거 젊고 활기찼던 TK 보수의 본성을 되찾아야 지역정치권, 나아가 전체 보수에 미래가 있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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