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대통령病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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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3   |  발행일 2017-04-03 제31면   |  수정 2017-04-03
[월요칼럼] 대통령病
허석윤 논설위원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 꿈은 소설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후 꿈이 바뀌었다. 주위에서 장래 희망직업을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고, 자기 책상에는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까지 써놓았다고 한다. 그의 꿈이 왜 그토록 이질적으로 변했는지는 알 순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많은 아이들의 꿈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을 막연한 꿈이 아니라 일생의 과업으로 삼고 올인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이를 두고 그가 어릴 때부터 대통령병(病)에 걸렸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그가 약관(弱冠)의 나이에서부터 시작한 정치 행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역대 최연소, 최다선 국회의원 기록도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얻은 스펙이자 훈장이었을 것이다. 그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을 즐겨 쓴 것도 이유가 있을 듯하다. 이 말은 원래 송나라 선승 혜개의 가르침으로 ‘사람이 가야할 올바른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인데, 어쩌면 그는 ‘대도(大道)’를 대통령으로 가는 길로 여겼을 법하다.

김 전 대통령같은 경우라면 대통령병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민주화에 단초(端初)가 된 측면도 있다. 대통령 자리에 눈이 뒤집힌 군인들이 총칼을 앞세워 권좌에 오른 일도 있었지만, 그런 사례를 제외하면 대통령병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병에 걸리지 않고서는 대통령이 될 수도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언급한 대통령병은 일반적인 의미로 본 것이다. 즉 오매불망 대통령 욕심에 무슨 짓이든 한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게 무난하다. 달리 말해 최고 권력을 갈구하는 일종의 ‘상사병’인 셈이다. 알다시피 상사병이란 게 심하면 사람이 망가지거나 심지어 죽을 수 있으니 예사 병은 아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대통령병은 더욱 심각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 걸리기 쉬운 권력 중독증이다. 특히 이 병은 치료해줄 의사나 약도 없어 고치기도 무척 어렵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11명 중 끝이 좋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무려 8명의 대통령이 부하에게 총을 맞거나 자살하고, 국민에게 쫓겨나거나 감옥에 가는 비운을 겪었다. 분명 이게 우연일리가 없다. 대통령병이 낳은 비극이다. 특히 권력 중독에 빠져 파탄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종신 대통령의 욕망 때문에 사실상 유배지인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장기 집권을 꿈꾸었지만 피살됐다. 이외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통령이 자신이 만든 권력의 덫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병에 발목이 잡혔다. 권위주의와 비밀주의란 장벽으로 절대권력의 성(城)을 쌓으려했지만 ‘최순실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여기에다 그는 무능, 부정, 불통, 위선 등의 온갖 불명예스런 꼬리표까지 달게 됐다. 그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하고 감옥까지 가게 된 것을 억울해할 것이다. 그리고 친박 세력을 비롯해 일부 국민도 동정론을 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국민이 잠시 빌려준 권력을 본래 제 것인 양 여긴 권력 중독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결혼은 국가에 재앙이었다. 그는 국가와 국민을 돌보기보다 돈에 환장한 ‘40년 지기’의 잇속만 챙기고 심지어 대통령 권력까지 나눠준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입장에선 어쩌면 사기결혼에 가까웠던 셈이다. 결국 그는 위자료 한 푼 못받고 강제이혼까지 당했는데, 모든 게 들통났음에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물론 대통령병을 개인 탓으로만 돌릴수 없다. 대통령을 ‘제왕’처럼 떠받드는 법과 제도, 관행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권력 분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 잔혹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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