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그게 배신일까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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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5   |  발행일 2017-04-05 제31면   |  수정 2017-04-05
[박재일 칼럼] 그게 배신일까

영화 ‘달콤한 인생’은 묘한 이유로 처절한 파국을 맞는 보스(김영철 분)와 심복인 부하(이병헌 분)의 관계를 그렸다. 의리에다 과묵한 부하는 보스의 애인에게 스쳐가는 듯한 연민만 품었는데, 이는 수습하기 힘든 갈등을 싹 틔운다. 보스의 말대로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연유였다. 자존심이라 할까. 쉽게 말해 상대가 굽히고 들어와야 한다는 심리적 우월감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충성은 해도 자존심은 굽힐 수 없다는 저항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영화 같은 배신의 정치가 2년째 유령처럼 배회한다. 배신은 조직폭력배 사이의 용어가 아닌 정치판의 화두가 됐고, 또 국민이 입에 올린다. 권력을 매개로 한 정치의 속성이 배신과 충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갖고 있다 해도, 배신 논쟁은 선진 대한민국과는 영 어울리지 않지만 현실이다.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근 2년전 여당의 원내사령탑을 지목하며 “자기정치의 논리로…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원내 사령탑은 알다시피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이고, 현재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다. 유승민은 국민 심판을 받기도 전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아니, 쫓겨났다. 대통령은 비록 국회법 개정 같은 명분을 말했지만, ‘배신’의 단어가 그것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나와야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파국은 이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삼권분립하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회 다수당의 원내대표를 찍어 내릴 수 있다면, 그것도 배신이란 용어를 동원한다면 그건 선진화된 민주정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고, 한편 위헌이다.

영화처럼 그건 또한 미스터리다. 영화 속 부하는 마지막으로 마주한 보스에게 묻는다. 왜 그랬느냐고. 당시 사퇴한 유승민에게 물어봤다. 연유를 알 수 있냐고. 모르겠다고 했다. 대통령 측근을 통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실 대통령도 그날 국무회의 발언 이후 배신의 정치의 진정한 이유를 국민에게 밝히지 않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는 결국 새누리당은 유승민을 찍어냈다.

대통령 탄핵정국에 이은 장미대선의 한편에서는 배신의 정치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쪽에서 주로 나오는 소리지만, 모든 것이 그때 배신에서 출발했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그들은 유승민의 탄핵 찬성을 배신이라 한다.

타당한 시각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유승민의 저항이 최순실 국정농단을 유발하고, 대통령 탄핵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을 유발한 것은 엄연히 아니다. 더구나 탄핵 찬반은 엄중한 물음이다. 설령 탄핵에 반대했다 하더라도 그건 국가를 향한 충성에서 나온 답이어야지 개인 의리에 바탕한 것이 될 수 없다. 일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의리 차원으로 판단한다면 이야말로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든다고 해서 현실의 아픔이 온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불쌍한 대통령의 탄핵’의 연유를 찾는다면 그건 한번도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은 정치적 반대세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국정원 댓글, 세월호 7시간, 메르스 대응,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그쪽을 응시해야지 괜한 희생양을 만들어 분노를 삼킨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장미대선을 앞두고 TK(대구·경북)가 흔들린다고 한다. TK정서는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살벌한 말이 대선후보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흡사 내전을 보는 듯하다.

TK 역시 분열할 수도 또 단합할 수도 있다. 그건 민의고 정치다. 다만 인간사의 의리도 중요하지만, TK가 의리를 화두로 정치를 하는 그런 시험장이 돼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 정치는 의리가 첫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은 보스 국가도, 조폭 국가도 아니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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