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 대구 보리밥 맛집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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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7   |  발행일 2017-04-07 제38면   |  수정 2017-04-07
藥이 되는 보리밥…탱글탱글 알갱이마다 추억의 맛

1960~70년대 모두 가난한 시절, 보리밥조차 든든하게 먹질 못하는 집이 허다했다. 70년대에는 많은 양의 쌀을 수입하는 처지라 절미운동의 일환으로 식당에서는 20%의 보리를 섞어 밥을 지었다. 수·토요일 주 2회는 ‘무미일(無米日)’이었다. 보리혼식 장려운동 때문에 학생들은 도시락 검사까지 받아야만 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을에 추수한 묵은 식량이 다 떨어지는 봄철이면 쌀이 거의 바닥났다. 3~4월경 보리는 여물지 않아 보리수확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보릿고개로 불리는 ‘맥령기(麥嶺期)’다. 그러다가 보리가 수확되면 꽁보리밥을 먹게 된다. 예전에 ‘보리숭늉이라도 마시라’는 말은 보리밥조차 귀할 때 요즘하고 다른 이미지의 보리차라도 마시라는 의미다.

‘가난’의 상징서 참살이 웰빙食 각광
젊은층엔 다이어트식품으로도 인기

쌀보다 칼륨 8배·철 5배 등 영양 풍부
프로안토시아니딘은 암 예방 효과도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 성인병 예방


보리밥은 ‘가난’과 같은 말이다. 오죽했으면 윷놀이판에서 이길 가망이 전혀 없을 때 아무렇게나 던지는 윷을 ‘보리윷’이라 했을까. 보리밥은 먹어도 배고프고 듣기만 해도 먼저 허기지는 음식이다.

이젠 보리밥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가난이 추억이 되던 무렵부터 보리밥은 참살이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식품으로 젊은이들로부터도 인기다.

보리밥에는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특히 쌀에 비해 칼륨은 8배, 철은 5배가 더 많다. 단백질 대사를 돕고 빈혈을 예방하는 비타민B군도 쌀에 비해 2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보리에 함유된 프로안토시아니딘이라는 성분은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리에 함유되어 있는 폴리페놀화합물은 강력한 항산화 효능이 있어 노화를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보리에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토코트리에놀 성분이 있어 혈관과 관련된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보리밥 한 그릇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게 보리밥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괜찮은 보리밥을 찾으려고 하면 잘 보이지 않는다. 개성있는 보리밥집이 지역에도 다수가 있어 찾아가 봤다.

▶흥미 보리밥 (수성구 신매로 16길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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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보리밥
동네 시장에 있는 자그마한 보리밥집이다.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된장과 보리밥 냄새가 진동한다. 탱글탱글 씹히는 산채보리밥이 반긴다. 생채나물이 아니다.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곤드레·취나물·고사리에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다. 나물 하나하나를 따로 연하게 밑간해 볶는다. 그저 두부와 파, 그리고 청양고추로 묽게 끓인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조금 얹고 쓱쓱 비빈다.

이 집은 향을 살짝 버무린 촌밥상 그대로다. 고추장은 직접 효소로 만든 것에 고기를 볶아 섞었다. 된장과 간장은 봉화에서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다. 옛날 집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 무, 고추, 호박, 가지 등 채소도 필요한 만큼 직접 농사를 지어 사용한다. 신선하기도 하지만 식감과 향이 남다르다. 얼큰하게 끓여내는 닭개장과 김치찌개도 찾는 사람이 많다. 고향 할매 손맛으로 만든 듯한 3년 묵힌 된장·막장·간장·고추장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053)792-2485

▶종로 진성식당 (중구 중앙대로 81길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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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진성식당
오랜 세월만큼 보리밥의 멋을 낼 줄 아는 집이다. 거뭇한 보리쌀이 들어간 보리밥을 대접에 담는다. 그 위에 금방 버무린 새콤달콤한 채소 겉절이, 무생채, 콩나물무침, 가지무침 등을 올리고 콩알이 그대로 있는 된장찌개 몇 숟가락 끼얹고 잘 비빈다. 한술 뜨는 순간 미궁(味宮)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입안을 사로잡는다.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듯한 통통한 보리밥은 씹는 것만으로도 맛있다.

이 집의 맛에 뺄 수 없는 게 있다. 바글바글 끓여 내는 된장찌개다.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다. 다시마와 멸치로 진하게 우려낸 맛국물에 두부, 파, 청양고추 등을 쫑쫑 썰어 넣고 끓여서인지 칼칼하고 깔끔한 맛이다. 자잘한 갈치나 고등어구이까지 곁들이면 보리밥상은 더욱 풍성해진다. (053)254-1787

▶한실골 따지 (달서구 한실로길6길 164)

비빈 보리밥 한 입과 청국장 한 숟가락은 ‘꿀 조합’이다. 거뭇한 보리쌀이 들어간 큼직한 그릇의 보리밥에 청국장찌개와 삼삼한 나물을 입맛대로 덜어 밥 위에 듬뿍 얹고 비빈다. 나물은 생채나물, 부추무침, 무채, 고사리, 호박나물 등 10여 가지가 있다. 심심하게 끓인 시래깃국을 곁들이면 입맛은 한층 풍성해진다.

이 집의 청국장도 주인이 손수 만들어 세월의 맛이 스며들어가 있다. 뽀얀 국물에 콩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 있어 보드랍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국물은 제법 걸쭉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보리밥만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튀기지 않고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생선구이를 곁들이면 된다. 속살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하면서 고소한 자반고등어, 제법 도톰한 갈치구이, 그리고 적당히 간이 밴 조기구이는 보리밥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질리지 않게 한다. (053)636-4666



▶큰바위가든(달성 유가면 휴양림길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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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가든

이 집의 천연조미료는 비슬산 산바람이다. 보리밥을 더욱 깊이 있는 맛으로 숙성시켜준다. 앉자마자 뜨끈한 숭늉 한 대접부터 낸다. 시골 밥상답게 돈나물에 잘게 썬 상추와 배추겉절이에 무나물, 콩나물 등. 고슬고슬 톡톡 씹히는 식감의 촉촉한 보리밥에 얹고 병째 내주는 직접 기른 깨로 짠 유달리 고소한 참기름을 기호에 따라 알맞게 넣는다. 거무튀튀하게 끓인 촌된장 몇 숟가락 끼얹고 보리밥에 비빈다.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과 싱싱한 상추, 그리고 짭짤한 된장이 조화를 이루어 먹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비지까지 곁들이면 구수한 숭늉처럼 편안하고 부드럽다. 비벼먹는 나물은 그날그날 직접 무치고 볶는다. 그래서인지 화학조미료는 일절 쓰질 않아도 감칠맛이 유지된다. (053)614-6496


▶논두렁 밭두렁 (달성 다사읍 서재로7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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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밭두렁
얄미울 정도로 깔끔한 옛날보리밥을 낸다. 삼색 나물에 콩나물을 넣고 된장국에 고추장을 얹어도 심심하다 싶으면 무생채까지 넣는다. 이 집에는 물김치를 함께 넣고 비벼야 아삭한 배추와 야들야들하고 차진 보리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한 국자 크게 담아내는 물김치의 국물은 국처럼 떠먹을 수 있어 보리밥을 더욱 맛있게 한다. 고추장도 여느 업소보다 더 숙성미를 간직하고 있다. 완전히 곰삭은 고추장보다 메주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고 특히 톡 쏘는 듯한 매운 맛이 살아 있다. 잡채를 비롯한 밑반찬도 가격 대비 푸짐한 편이다.

널찍한 주차장과 깔끔한 분위기의 실내에 참숯으로 주방에서 구워 내는 돼지불고기도 인기가 있다. (053)585-1382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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