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랜드 오브 마인·시간 위의 집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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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7   |  발행일 2017-04-07 제42면   |  수정 2017-04-07
하나 그리고 둘

랜드 오브 마인
포로가 된 독일 소년병들 이야기


20170407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덴마크를 점령했던 5년 동안 해안선을 방어하고 요새화하기 위해 일명 ‘대서양 방벽’을 구축했다. 영국에서 넘어오는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한 지뢰를 매설한 것이다. 이때 덴마크 해안선을 따라 매설된 지뢰는 무려 200만 개로, 그야말로 ‘지뢰밭’을 형성해 누구도 근처로 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자 덴마크군은 포로로 잡혀 있었던 독일 소년병들에게 서해안 해변에 매설된 지뢰의 해체 작업을 맡긴다.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성인들도 5천개 제거당 1명이 사망할 정도로 위험한 작업을 소년들의 여린 손에 떠넘긴 것이다. 1929년 체결된 ‘포로의 인권 보호’에 관한 국제적 조약까지도 무시한 이 만행은 결국 통계에도 다 잡히지 않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남기게 된다. ‘랜드 오브 마인’(감독 마틴 잔드블리엣)은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이 남긴 국가 및 민족 간의 골 깊은 갈등, 다음 세대로 전가된 폭력의 문제 등을 과감하게 들추어낸다.


2차 대전 직후 덴마크서 있었던 실화 바탕한 영화
해변 200만 지뢰 제거에 맨손으로 내몰린 獨 소년병
마틴 잔드블리엣의 과하지 않은 연출 감동 극대화



전쟁 직후, 덴마크인들은 몇 년간 그들 위에 군림했던 독일군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인도주의나 관용 따위는 잃어버렸다. 독일 소년병들의 지뢰 해체 작업을 지휘하게 된 ‘칼’(로랜드 몰러)도 예외 없이 이 어린 아이들을 가혹하게 대한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상자가 생겨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칼은 점차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를 흔들리게 만드는 것은 전쟁의 화마도 빼앗지 못한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이다.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지뢰 해체 작업에는 언제나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패전국의 포로들에게 쏟아지는 덴마크인들의 멸시와 횡포 또한 이 지난한 작업만큼 아이들을 긴장시키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지뢰와 싸워나가던 아이들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랜드 오브 마인’의 첫 번째 의의는 그 어떤 참혹한 묘사가 있는 전쟁영화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는 점에 있다. 최근 ‘헥소 고지’(감독 멜 깁슨) 같은 작품이 전쟁영화의 일반적 관례대로 아비규환을 실감케 하는 전투신을 보여줌으로써 반전에 호소한다면, 전후의 상황을 다룬 ‘랜드 오브 마인’은 전투신 하나 없이도 전쟁이 남긴 깊은 생채기를 파고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선을 따라 아이들이 일렬로 엎드려 지뢰를 해체하는 장면, 광활한 모래사장 속에 점처럼 파묻힌 그들의 뒷모습은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건조한 바람, 따가운 햇빛이 지뢰밭의 정적과 더불어 숨 막힐 듯 삭막한 분위기를 잘 묘사해준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소년병들은 대부분 폭력의 역사 속에 흔적 없이 사라져간 작은 존재들이지만 이런 훌륭한 영화적 이미지들로 인해 오래 기억되고 추모될 것이다.

영화의 두 번째 미덕은 이토록 비정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냉소로만 일관하지 않으려는 연출가의 태도다. 끝까지 소년병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는 대부분의 덴마크 군인들과 달리 ‘칼’은 마음을 돌린다. 그 또한 분노에 차 있었던 다혈질의 군인이었으나 전후까지 이어지는 비인간적 행태와 소년병들의 목숨에는 상관으로서,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영화는 밋밋한 잿빛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회심의 가능성, 아직 인간에게 남아있는 이타심과 박애의 한 줄기 빛이 영화를 진정 아름답게 만든다. (장르: 전쟁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시간 위의 집
끔찍한 살인이 벌어진 집…25년 만의 귀가


20170407

영화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방향성의 영역, ‘시간’을 원하는 대로 길들일 수 있는 매체다. 오직 스크린에 몰입하는 순간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종종 우리를 영화관으로 인도한다. 제목 그대로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한 공간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 ‘시간 위의 집’(감독 임대웅)은 그간 과거와 미래를 수없이 오갔던 SF나 판타지 장르와는 또 다른 소재를 다룬다.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세 축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미희’(김윤진)는 경찰인 남편 ‘철중’(조재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효제’, 그리고 막내 ‘지원’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지원을 잃은 후 미희와 철중의 관계는 점차 나빠지게 되고 이들의 커다란 2층 집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하룻밤 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미희는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다. 미희가 병보석으로 풀려나자 젊은 최신부(옥택연)가 그녀의 곁을 맴돌며 진실을 밝히려 애쓰지만 그녀는 계속 “그들이 남편을 죽이고, 아이를 데려갔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시간의 비밀 간직한 공간과 그곳 사람에 관한 영화
주연 김윤진 1인2역 가까운 열연·과감한 편집 눈길



‘시간 위의 집’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소재의 독특함을 살리기 위한 과감한 편집이 눈에 띈다. 특히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25년 전 그 날로부터 현재로 뛰어넘는 시차를 교도소에서 복역한 미희의 변화로 표현한 장면은 인상적이다. 젊은 주부에서 백발의 할머니로 변해버린 미희의 모습에는 그녀가 경험한 세월의 고통과 시간의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희와 함께 시간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2층의 일본식 주택이다. 한 가족이 살았던 과거에는 높은 채도와 다양한 색깔을 가졌던 집안이 미희 혼자 남은 현재에는 푸른빛과 명암 대비가 강조된 공간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외양과 달리 집의 내부는 현대적으로 개조되어 있으며 서양식 가구들로 꾸며져 있어 그 자체로 공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편안함을 느껴야 할 집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낯선 기운이 두려움의 근원으로서 잘 표현된 작품이다. (장르: 미스터리/스릴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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