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석장균 한국고전무예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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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현철기자
  • 2017-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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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마비 견디며 고전무예 맥 잇기 선봉에 선 이 시대의 名將

<이 사람이 사는 세계>

고령에서 전통무예 전승에 힘쓰고 있는 석장균 한국고전무예연맹 회장이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쏴 날아오르는 표적을 맞히는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딱 1년 전 고령 대가야체험축제장에서다.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은 뮤지컬 ‘가얏고’의 배우들을 비롯해 학생, 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축제를 기념하는 퍼레이드 행렬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의 흥겨운 춤사위로 흥을 더하고 있을 즈음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 이가 나타났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삼국시대의 무사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말발굽 소리와 함께 긴 말총머리를 휘날리며 큰 칼을 휘두르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관광객과 지역주민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는 바로 석장균 한국고전무예연맹 회장(57).

히이잉~.

석 회장이 말 고삐를 당기자 준마는 두 발을 번쩍 들어올리며 큰 울음소리를 냈다. 말과의 호흡은 그 옛날 전장의 선봉에 선 장군처럼 위엄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이날 비록 먼발치에서의 첫 대면이었지만 그의 안광은 천리를 뻗치고, 칼놀림은 만리를 베고도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전통무예 계승 없어 한탄
조선시대 군사훈련서 연구
검술 위주 무예 탈피 노력
고전검도 등 대중화 기여
거쳐간 제자 5천명 이르러
인성 교육 최우선으로 생각



◆“전통무예 부활시키자”= 1년이 지나 다시 그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지난 3월 대가야유소년승마단 창단 소식을 접하면서다.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기마문화체험장에서 만난 석 회장은 유소년승마단원을 훈련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가 고령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015년 대가야기마문화체험장을 위탁 운영하면서다.

“고령은 대가야의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마문화도 발달한 곳입니다. 대가야의 융성했던 기마문화를 오늘날 우리 후손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어릴 때부터 운동을 즐겨온 석 회장은 고교 시절 처음으로 진검을 접하게 됐다. 칼을 사용하는 게 좋았다는 석 회장은 당시 일본 전통검술을 배우면서 우리의 전통검술이 체계적으로 전해져 내려오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잊혀져가는 전통무예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역사적인 명분을 가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전통무예단체의 창립 필요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공연을 통해 일반인에게 전통무예를 알리는데 앞장섰다. 그런 그에게 대가야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령은 기회의 땅이 아닐 수 없다.

석 회장은 조선시대 군사훈련용으로 사용된 ‘무예도보통지’ 연구를 통해 단절된 우리나라 전통무예의 맥을 되살려냈다. 전통무예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검술 위주의 무예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전무예로 명칭을 바꾸고 시범단을 꾸려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특히 그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쏴 날아오르는 표적을 맞히는 놀라운 무예실력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공연횟수만 1천회가 넘는다. 2007~2008년 서울 경희궁에서 조선시대 무과시험을 그대로 재연했으며 2009~2014년 서울 남산 팔각정에서 봉화의식과 전통무예 상설공연을 실시했다. 또 대구 경상감영공원에서는 2006~2015년 주말을 이용해 조선시대 풍속 재연의식으로 전통무예 시연을 이어갔다.

그는 ‘무예문화의 새로운 도약과 함께 신문화 창조’라는 목표 아래 △한민족 도검법 연구회 설립(1987년) △한국고전검도협회 창립(1995년) △제1회 전국검도진검베기대회 개최(1997년) △한국고전무예연맹 창립(2005)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복원한 전통무예의 상설공연은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석 회장은 △24반 문예보존회 △한국마상무예원 △고전검도 △실전 활쏘기 △용천검무 △전통군례보존회 △청소년 수련활동 △전통문화 체험행사 등을 통해 고전무예 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안면마비 시련을 넘다”= 무예가 취미가 아닌 업이 된 그에게도 운동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합기도·검도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종합 무도인의 길을 걷던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 당시 킥복싱 시합을 위해 일본을 찾았다. 시합에 앞서 몸을 너무 혹사한 탓일까. 석 회장은 훈련 중 안면 근육의 미세한 경련을 느꼈다. 전통무예 보급에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무리한 운동 후유증이라 쉽게 생각하다가 그만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얼굴이 돌아갔다.

치료를 위해 귀인이 있다는 산에 들어가 수련도 해보고 온갖 노력을 다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석 회장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사람들의 선입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전통무예의 보급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약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항상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석 회장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십자인대를 다쳤을 때도 아니며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볼 때도 아니었다. 그는 성격상 한 번 제자를 삼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하지만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한 채 가식적으로 다가오는 이들로 인해 가슴 아플 때가 간혹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걸까’라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단다. 그래서 제자를 가르칠 땐 인성교육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지난 세월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만 무려 5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전통무예 보급을 위해 그가 쏟은 열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석 회장은 가족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자신을 이해하고 묵묵히 도와주는 가족이 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운동은 미쳐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취미로, 평생 하면 좋은데 나처럼 이렇게 하면 가족도 힘들고 본인도 힘들고 주위 사람이 다 힘들어요.”

석 회장은 현재 무예인생의 전환점에 섰다. 대가야유소년승마단 창단을 계기로 고령에서 마상무예의 새로운 희망을 싹 틔우고 있다.

고령=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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