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대국굴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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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8   |  발행일 2017-04-08 제23면   |  수정 2017-04-08
[토요단상] ‘대국굴기’의 민낯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10여 년 전 우리나라 기업인들 사이에 ‘대국굴기’ 열풍이 분 적이 있다. 대국굴기는 중국 국영방송 CCTV가 만들어 13억 중국인이 열광적으로 시청했던 12부작 다큐멘터리 대작이다. 15세기 이후 초강대국 지위를 누렸던 9개 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이 프로의 핵심요약본이 책으로 나왔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전편(全篇)을 다 보았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내 학습교재로 쓰라”고 화답을 했다.

대국굴기 열풍은 그렇게 불기 시작했다. 이후 대국굴기라는 말은 세계를 향해 산처럼 일어서는 중국의 야심찬 행보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단어 그 자체가 중국의 자존심이었다. 그랬던 중국이 요즘 들어 대국굴기는커녕 동네 양아치들도 하지 않을 치졸한 짓을 골라서 하고 있다. 특히 사드(THAAD) 보복의 경우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지난달 19일 중국 하이난섬 하이커우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KLPGA투어에서 우승을 한 김혜림은 단 한 번도 TV에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중계방송 내내 뒷모습이거나 원거리, 먼발치만 비쳤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모자에 적힌 ‘LOTTE’라는 글씨 때문이었다. 스포츠 중계방송에까지 이러니 다른 분야는 말을 하나마나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이란 바로 한류금지령이다. ‘무한도전’을 비롯해 한국의 인기 오락프로그램이 전면 방영금지를 당했다. 드라마 ‘도깨비’의 중국 방영 길도 막혔다. 연예인은 대놓고 출연금지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도 이유 없이 취소를 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경우는 실로 눈물겹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점포의 수가 절반을 넘었고, 나머지도 거의 스스로 문을 닫았다. 단체관광 금지는 이미 옛날 일이 되었다. 몽니는 제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통관 과정에서 제품을 전수 조사하는 무리한 검역(檢疫)은 차라리 양반이다. 스테인리스 대신에 싸구려 고철만 잔뜩 실어 보낸 경우도 있다. 계약을 하고 제품생산 도중에 계약을 취소한다. 항의를 하면 “고소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사드를 반대하는 중국의 논리는 요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드 레이더가 자기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싫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을 커버하는 ‘천리안(千里眼)’은 따로 있다. 대만에는 최대 탐지거리 5천㎞가 넘는 ‘페이브 포즈 레이더’가 있다. 이것은 중국의 ICBM 기지 전체를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다. 미국 하와이에서 동해로 가끔씩 날아오는 해상배치 ‘X밴드 레이더’의 성능도 가공(可恐)할 수준이다. 이것은 4천800㎞ 떨어진 골프공까지 식별할 수 있다. 일본에 이미 배치된 2곳의 사드 레이더는 최대 탐지거리가 2천㎞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사드는 탐지거리가 기껏 600㎞에서 80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유독 한국의 사드만을 문제 삼는 진짜 속내가 뭘까.

군사적 이유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유가 어쨌거나 중국의 한국 때리기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보다 당당하고 성숙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사드 훨씬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한국기업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망했던 경험들이 있다. 한때 앞을 다투어 칭다오에 진출했던 대구의 섬유기업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잘나가던 SLS그룹도 다롄에 조선소를 짓고 바로 망했다. 오죽하면 ‘중국 가서 망하는 법’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을까. 굴기하는 대국의 모습은 흔적도 없다.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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