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봄날 그리고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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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0 07:51  |  수정 2017-04-10 07:51  |  발행일 2017-04-10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봄날 그리고 꽃비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아이가 너무 고지식해서 걱정입니다. 휴일에도 늘 자기 방에 틀어박혀 과학 관련 책만 읽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드라마 ‘도깨비’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집니다. 교실에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친구를 보면 견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내 아이지만 너무 빈틈이 없어요. 시계 같습니다. 아이는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납득이 돼야 받아들입니다. 전에는 그런 태도가 실수를 하지 않고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어 성적이 잘 안 나오니 걱정이 됩니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은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는 장차 과학자가 되고 싶답니다.” 아이가 수학, 과학 같은 논리적인 과목만 좋아하고 너무 진지해서 걱정이라는 어느 엄마의 말이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무엇인가를 증명할 때는 논리로 하지만, 발견할 때는 직관으로 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도 직관에서 먼저 나왔다. 논리적, 수학적 접근은 그다음이었다. 최고의 과학자는 먼저 상상하고 직관하며, 그 후에 숫자나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라고 한다. 예술가는 대상을 단순하게 모방하고 묘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느끼고 직관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과학자가 되려면 예술가의 직관력과 상상력,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활자 매체인 책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때로 책을 덮고 눈을 감고 사색하면서, 또는 대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영감을 받게 된다. 감각과 느낌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 예측하고 붓을 든 적이 없다고 했다. 작업하는 순간 상상력과 직관이 섬광처럼 던져주는 것을 표현했다는 뜻이다. 그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것을 그린다고 했다. 그는 “당신들은 보고 있지만 보고 있는 게 다는 아니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 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아라. 눈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라”고 말했다.

삼중고의 성녀 헬렌 켈러가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사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수필이다. 그녀는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꼭 경청해야 할 충고를 해 준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눈을 사용하고,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소리, 새소리,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듣고, 내일이면 모든 촉각이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을 만지고,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라.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엄마에게 말했다. “지금 도로변과 공원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한 번 나가보십시오. 화사한 벚꽃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바람이 불 때 떨어지는 꽃비에 온몸을 흠뻑 적셔보십시오. 그런 경험이 바로 아이가 균형 있게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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