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한 건꼴 성희롱·성폭행…충격의 포스텍 대책 없나?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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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4 07:18  |  수정 2017-04-14 07:18  |  발행일 2017-04-14 제7면
MT성폭행 등 올해만 벌써 2건
조사받던 대학원생은 목매 숨져
학교측 재발방지 약속 ‘공염불’
형식적인 사후 조치 개선 시급
한 해 한 건꼴 성희롱·성폭행…충격의 포스텍 대책 없나?

국내 최고의 이공계대학 포스텍에서 ‘성적(性的) 일탈’이 이어지면서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한 해 한 건꼴로 성희롱·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돼 대학 측이 학내 성폭력 예방 등의 관리보다는 사건 은폐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잇따르는 성희롱·성폭행

13일 포스텍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이 대학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관련 사건은 총 11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해 한 건꼴로 성희롱·성폭행 관련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올 들어서만 두 건이 발생했다. 이 중 한 건은 가해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악의 선택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과 포스텍에 따르면 지난 11일 포항시 남구의 한 원룸에서 목매 숨진 대학원생 A씨(24·영남일보 4월13일자 9면 보도)는 성폭행 사건에 휘말려 학교 자체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교제하던 후배 여학생이 최근 ‘성폭행 당했다’며 A씨를 학교에 신고했던 것. 경찰은 타살 정황 등을 발견하지 못했고, A씨가 ‘힘들다’라고 적은 유서 형태의 메모가 나온 점 등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모 학과 MT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재학생 B씨는 지난 2월26일 오전 4시35분쯤 포항시 북구 청하면 월포리 한 펜션에서 여자 신입생 C씨를 성추행하고 D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현재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당시 MT에는 교수 등 학교 관계자가 동행하지 않아 학교 측이 사고 예방에 소홀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2015년에는 포스텍에 파견돼 겸직교수 신분으로 학생을 지도하던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원 E씨가 성추행 혐의로 해임된 바 있다. E씨는 2013년 12월, 2014년 7월과 9월에 대학원생 F씨를 상대로 입맞춤을 시도하거나 포옹하는 등 강제로 성추행하다가 F씨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전문가 부족한 성폭력대책위

포스텍은 지난 2월 발생한 재학생 MT 성범죄와 관련해 지역사회에 큰 실망과 고통을 끼쳤다며 공식 사과했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해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여 만에 학내 성폭력 사건이 또 불거지면서 약속은 공염불이 되고 있다. 성폭력 사건의 사후 조치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포스텍은 현재 학교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내 성폭력 사건을 접수하고 있다. 사건이 접수되면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성희롱·성폭력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꾸려진다. 문제는 조사가 이뤄지는 대책위 단계다. 대책위가 성폭력 상담 또는 해결을 위해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총 11명으로 꾸려지며 대책위원장에는 부총장, 부위원장은 상담센터장, 그리고 교무처장·변호사·기숙사사감·입학처장·행정처장 등으로 채워진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전문가보다 교수가 더 많은 셈이다.

지난 11일 숨진 A씨의 경우 대책위의 조사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폭력 상담전문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생일수록 작은 일에 크게 무너진다. 숨진 A씨는 최악의 경우 제적까지도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에게 사실이 알려질 것을 가장 두려워해 최악의 선택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성폭력 조사와 관련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대학 관계자들이 조사에 나설 경우 더 큰 문제(자살 등)가 야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성지식 데이트폭력 유발

전문가들은 현실성 떨어지는 대책과 형식적인 교내 사후 조치보다는 체계적인 예방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상담기관인 <사>포항한마음상담소의 배수현 소장은 “성폭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어난다. 지식과는 상관이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성폭력 중에서도 가장 많이 문제시되는 게 데이트폭력이다. 사귀는 사이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관계가 이뤄지면 무조건 성폭행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소년이 포르노 등의 동영상을 쉽게 접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다. 포르노 영상을 본 청소년들은 ‘처음에는 여자들이 싫다고 해도 나중에는 좋아하더라’ 등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 소장은 성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하며, 사람을 존중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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