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감포읍내 해국길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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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4   |  발행일 2017-04-14 제36면   |  수정 2017-04-14
좁장한 고샅길 벽마다 사철 바다香 밴 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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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 해국계단. 해국길의 포토존이다. 가을이면 계단 양옆으로 해국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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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환해지는 오르막에 소나무 한 그루가 하늘에 닿고 그 뒤로 산당 입구가 보인다.

지금쯤이면 만개했겠다, 경주 벚꽃. 보문단지 지나 감포 가는 길, 꽃들은 아직 붉고 고집 센 봉오리였다. 오랜만에 추령을 넘어볼까. 보문호를 지나자 서늘한 초록의 길이다. 휘어지는 길가에 깜짝 수양벚나무 한 그루가 능청능청 환했다. 덕동 호숫가에는 채도 높은 노랑 개나리가 만개했고, 산속에서 이따금 분홍 참꽃이 반짝거렸다. 갈 적마다 사람들 와글거리던 중국집은 ‘임대’ 중이었고, 꽃 계절 단풍계절마다 차들이 줄 서던 길에 달리는 차는 드물었으며, 북천은 서럽게 가물었다. 추령 길이 저리 좁았나. 고갯길을 포기하고 터널을 지난다. 1차로 한가운데 누운 고라니를 흠칫 스쳐 지나자 곧, 바다다.

‘감포 깍지길’ 8구간 중 4구간의 일부
1920년대 개항 이후 일본인 이주 어촌
한 사람 겨우 지날 너비 골목 구불구불
적산가옥·신사 등 근대역사 흔적 가득

‘다물은집’ 주변은 당시 가장 번화거리
언덕배기 교회선 감포항·동해 한눈에


◆감포읍 고샅길은 해국길

감포 육거리는 오늘도 번화하다. 감포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맞은편 횟집 아줌마가 소리친다. “식사 안 하시우?” “있다가요!”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이다. 가까운 항구에는 노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고양이 한 마리가 주변을 어슬렁댄다. 육거리 버스정류장 뒤 감포 공설시장에는 장날도 아닌데 할매들의 좌판이 펼쳐져 있다. 장날도 아닌데 장 보러 나온 사람이 여럿이다. 시장 옆 골목으로 들어선다. 감쪽같은 고요다.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골목 양옆으로 낮은 지붕을 인 작은 집이 수두룩하고 손 뻗으면 창을 똑똑 두드릴 수도 있을 법하다.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라도 올라치면 몸을 옆으로 돌려 배에 바짝 힘을 주어야 통과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골목길 벽에는 해국이 잔뜩 피었다. 봄날의, 사철의 해국이다. 꽃핀 지 오래되었는지 더러 꽃잎 색이 바랬다. 이 구불구불 고샅길이 감포 해국길이다.

감포읍 사람들은 2011년 감포의 마을길과 구릉, 바다를 엮어 ‘감포 깍지길’을 만들었다. 바다와 사람이 깍지를 낀 길, 혹은 연인들이 깍지를 끼고 걷는 길이란다. 감포읍 대본리에서 오류리까지 전체 68㎞로 총 8개 구간이 이어져 있다. 감포 읍내의 해국길은 깍지길의 일부로 4구간 ‘고샅으로 접어드는 길’에 속한다. 해국길에서는 깍지 낀 채 일렬로 걸어야 한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고, 비탈길의 모퉁이에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하늘에 닿아 있다. 나무 뒤로 계단이 오르고 그 끝에 ‘산당’이 보인다. 예전 일본인들이 산신을 모셨던 곳이다. 쩍 갈라진 시멘트 계단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듯하다. 산당은 지금 벚꽃들이 눈 시리게 아름다운 정원이다. 산당 옆은 언덕의 꼭대기.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교회 놀이터에서 감포항과 동해를 마주한다. 소나무 숲이 올라서있는 저 곶 끄트머리의 등대가 아마 송대말 등대일 게고, 가운데의 흰 등대가 감은사지 삼층 석탑을 본떠 세웠다는 새 등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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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계단 옆 요새처럼 탄탄한 축대. 축대는 옛 지하 창고를 품고 있다.

◆해국길의 번화가, 다물은집 구간

교회 앞은 긴 계단이다. 계단을 내려가 돌아보면 커다란 해국이 벙실 웃고 있다. 해국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국계단’이다. 일제강점기 때 이 계단은 신사로 오르는 길이었다고 한다. 교회가 들어선 곳은 신사 자리였던 셈이다. 계단 가운데에서 다시 골목으로 꺾어 들면 거대한 축대가 있다. 축대는 공간을 품고 있다. 몇 개의 창과 갈색의 문이 있고 ‘옛 건물 지하 창고’라는 안내판이 있다. 대피소 겸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라 한다.

길이 조금 넓어진다. 삼거리 모퉁이에 적산가옥 한 채가 설렁탕집 간판을 달고 서있다. ‘다물은집’이다. ‘다물’이란 ‘되찾는다’ 또는 ‘되돌려 받는다’는 뜻의 우리말이라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이 건물 안에 작은 방이 7개나 된다고 했던가. 바로 앞은 옛 목욕탕이다. 남탕, 여탕의 입구는 나무판으로 막혀있고 우뚝 솟은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렸고 목욕탕 주인은 떼돈을 벌어 호텔을 지었다는 말이 있다.

목욕탕에서 뒷길로 조금 가면 일제강점기 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이 있다. 우물 속에 물이 찰랑거리고 두레박도 있지만 마실 수는 없다고. 우물 옆 언덕 위로 교회가 보인다. 목욕탕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아니원길’이다. 옛날 안씨 성을 가진 착한 의사가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는데 그가 운영하던 의원으로 향하는 길이라 아니원(안의원)길이다. 큰 소나무가 있어 지금은 ‘소나무집’이라 부르지만 ‘안의원’ 돌 간판이 기둥에 살짝 묻힌 채 남아 있다.

1920년대 개항 이후 해국길 일대에는 일본인들이 살았다. 골목골목마다 옛 일본가옥들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대부분 수리와 보수를 거쳤지만 지붕 끝에서, 창에서, 낡은 비늘 벽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다물은집 주변은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고요한 골목길에 문 열린 한 칸 방이 소란스럽다. 귀 기울여 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다. 오래전 일본말로 가득 찼을 골목에 이제 또 다른 이국의 낯선 언어들이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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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안 나무 천장에는 제비가 집을 지었고 천장 낮은 이발소에는 이발하는 사람이 없다.

◆감포항에서

목욕탕 앞에서 감포의 메인스트리트인 감포로로 곧장 통하는 아케이드가 있다. 2층짜리 건물이 죽 늘어서 있는 건물의 아랫부분이다. 윗부분은 곡선으로 살짝 멋을 내었고 내부 기둥은 타일로 장식했다. 아케이드 안 나무 천장에는 제비가 집을 지었고 천장 낮은 이발소에는 이발하는 사람이 없다. 아케이드 지나 감포로 저편은 바로 감포항이다. 바다 내음, 비린내가 훅 풍겨온다.

감포항은 1920년대 인천 제물포항과 함께 개항한 항구다. 지난 세월 발전의 속도는 느렸고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지만 여전히 제법 큰 항구라 느껴지고 활기 넘친다. 노부부는 아직도 그물을 손질 중이다. 어판장 앞은 부산하다. 배 위에 늘어선 사람들이 박자 맞춰 그물을 털고 있다. 그들의 7할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물을 털 때마다 어부의 굵은 팔뚝만 한 은빛 물고기들이 훨훨 난다. “무슨 물고기인가요?” “청어. 청어잡이 배야.” 오래전 동해를 떠났다던 청어가 돌아온 모양이다. 아줌마가 소리친다. “식사 안 하시우?” 점심시간은 살짝 지났지만 식당 안은 시끌시끌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간다. 4번 국도를 타고 감포로 가면 된다. 불국사 지나 토함산터널을 통과하면 바다까지 더 빠르다. 감포항 공설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무료다. 감포공설시장 오른쪽 골목에서 해국길이 시작된다. 감포 수산물 상회 옆 골목이다. 해국길은 해국 골목~해국 계단~옛 건물 지하 창고~다물은집과 구 한천탕~우물샘~소나무집 순으로 걸으면 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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