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 ‘골목 카페’ 이정연 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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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4   |  발행일 2017-04-14 제41면   |  수정 2017-04-14
고추장을 만난 파스타…순창댁 손맛 더해지니 ‘맛의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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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고추장이 가미된 고추장파스타는 퓨전 파스타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추장 특유의 텁텁한 맛을 제거하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 고추장돈가스(오른쪽 위) 역시 돼지 등심의 느끼한 맛을 고추장소스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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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 현재가 공감하도록 신축된 골목 카페는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의 윤곽을 담고 있다.

향촌동·북성로. 영욕의 세월을 건너왔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는 절정의 호경기. 특히 북성로와 향촌동으로 연결되는 자잘한 골목엔 유달리 여관과 전당포가 많았다. 경기가 그만큼 좋았다. 하지만 그 골목은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일락서산(日落西山) 같은 신세. 폐광된 탄광촌 같았다. ‘도심공동화’의 표본이랄 정도로 황량해져버렸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은 철거대상 1순위로 지목됐다. 다행히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중구청의 도심재생사업이다. 여러 건물이 심폐소생술을 받게 된다.

향촌동 여관골목의 한옥형 카페 건물
차정보 고건축물 복원 전문가 야심작
별칭 ‘골목에 봄’답게 예쁜 파스텔풍

여수 출신 50대 女 오너셰프가 주인장
고추장 요리에 훅 빠져 택호도 ‘순창댁’
2014년 순창에 남편이 만든 ‘봄’ 이어
낯선 대구서 고추장요리로 한판 승부수

바른 식재료로 요리‘정직한 음식’ 원칙
엄마 찾아가는 기억의 지도 그리듯 요리
1년여 연구로 고추장요리 3인방 탄생
26일까지 ‘…놀자전’ 예술공간 활용도


◆ 친절한 순창댁

향촌동 여관골목. 여긴 양지보다 ‘음지’가 더 푸짐하다. 대낮에도 그늘이 8할 이상. 그런데 올해 그 골목에 외계인 같은 카페 하나가 ‘홀씨’처럼 피어났다. 카페 이름은 ‘골목’. 이 카페의 별칭은 ‘골목에 봄’이다. 고건축물 복원 전문가이자 ‘다연발 예술쟁이’로 불리는 차정보가 지은 건물이다. 하얀 아크릴 간판이 담장 위에 메주만 하게 앉아 있다. 담장 위 강아지풀과 마당 복판의 억새가 수런·일렁거린다. 정면은 한옥, 오른쪽은 요즘 카페 스타일. 신구 건축물의 절묘한 앙상블이다. 낡은 골목이라서 카페는 한몫 더 빛날 수 있었다. 드문드문한 행인들에겐 더 ‘느닷없는 보너스’ 같다. 한겨울 같은 골목에 비한다면 이 파스텔풍 카페는 그야말로 ‘봄날’.

그런데 참 사각지대다. 장사가 도무지 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에서 온 한 여성 오너셰프가 이 공간을 임차했다. 이정연 골목 카페 대표(51). 그녀에게 ‘택호(宅號)’가 있다. ‘순창댁’이다. 고향은 여수인데 워낙 고추장 요리에 빠져 있고 ‘고추장 셰프’로 인터넷에서 조금씩 알려져서 그렇다. 현재 순창과 대구를 오가면서 양식 같은 고추장요리 전파에 여념이 없다. 여느 셰프처럼 음식에 달통한 실력파는 아니다. 음식 갖고 ‘재밌게’ 논다. 그런 그녀가 고추장파스타와 고추장돈가스를 갖고 대구 입맛과 한판 붙기 위해 대구행을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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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동거한 음식

순창댁에겐 대구가 퍽 낯설다. 인맥이 제로였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지역의 몇몇 예술가와는 찰떡궁합. 그 때문에 큰맘 먹고 대구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차정보다. 그와의 인연으로 이 카페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대구·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순차적으로 알게 된다. 오는 26일까지 이 카페에서는 ‘북성로 골목에서 놀자’전이 열린다. 정태경, 변미영 등 지역에서 좀 놀 줄 아는 작가 16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실은 전시를 가장한 ‘음주가무 행사’랄까.

순창댁의 남편은 순창에 있다. 주말부부다. 남편은 양식, 그녀는 한식에 능하다. 남편이 순창에서 꾸려가는 카페 ‘봄’에서 먼저 ‘봄에서 놀자’전을 론칭했다. 1박2일간 술을 푸고 놀았다.

아무튼 차정보의 아들이 아버지가 신축하다시피 한 대구의 골목 카페에서 먼저 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런 언저리에 순창댁이 고추장을 권총처럼 차고 장고처럼 나타난 것이다.

곱게 생겨 남들은 ‘팔자 편한 삶’인 줄 착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10대 후반에 엄마가 타계했고 이후 남편을 만나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할 때까지 빡센 세월이었다. 아이 셋을 낳고 현모양처로 살던 2013년 어느 날. 시부모 두 분이 동시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외아들인 남편이 병간호를 전담해야만 했다. 운명이었다. 시댁 어른이 운영하는 업을 이어받아야만 했다. 비즈니스호텔을 짓기 위해 귀촌을 결심한다. 요리에 관심 많고 엉뚱하고 핫한 아이디어맨인 남편. 모 건설사 구매팀에서 20년 이상 재직하다 퇴사한다. 순창댁도 처음에는 서울과 순창을 오가며 놀 요량이었다.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다. 설계가 몇번 엎치락뒤치락. 고심 끝에 레스토랑을 연다. 대학에서 한식 강의하는 시누이에게 몇 개월 속성으로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피 튀겨가면서 시행착오 겪으며 몸으로 익혀나갔다.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2014년 순창에서는 새로운 버전인 한정식카페 ‘봄’이 탄생했다.

일단 맛있는 음식보다 ‘정직한 음식’을 내자고 결심한다. 시대가 힐링푸드 시대라서 그랬다. 그런데 주위에 너무 맛있는 식당이 즐비했다.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선 이길 수 없다. 몇 가지 원칙을 정한다. 일단 식재료를 속이지 말자,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요리를 하자, 화학조미료 도움을 일절 받지 않겠다 등이었다. 참기름은 농사지은 깨를 방앗간에서 직접 짜서 사용했다. 고춧가루도 산지의 농민 걸 사용했다. 그때 그녀는 ‘요리란 엄마를 찾아가는 기억의 지도’란 독백을 자주 했다 한다.

◆ 음식에 문화를 섞어라

늘 ‘음식은 문화’라고 생각했다. 음식은 먹는 게 아니라 ‘감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요리할 때 사용하는 두건도 패션모자 스타일로 변형했다. 문화예술인이 절실했다. 그들 모두 최고의 ‘인테리어’였다. 그들이 자주 오도록 해서 갤러리·공연장 같은 카페로 반죽해나가고 싶었다.

봄 카페는 단번에 전라도 지역 문화예술인의 쉼터로 변해나갔다. 이재무, 림태주, 최돈선, 이호, 황풍년, 임재천, 백중기, 연규현 등 예술인들을 불러 작가와의 만남도 마련했다. 작은 음악회도 덧댔다. 돈이 안 되는 출판사 사장 림태주를 위해 출판사 ‘행성B잎새’ 책 코너도 카페 한편에 마련해줬다.

순창댁의 계획이 적중했다. 비록 후발주자였지만 봄은 1년 만에 모범음식점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제 순창에서도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는 제대로 된 한정식집 하나가 생겼구나’란 덕담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문제였다. 그녀는 워커홀릭 상태였다. 일에 빠져 있어 쉴 틈이 없었다. 대상포진이 수차례 재발했다. 툭하면 입원이었다.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았다. 결심했다. 매출의 80~90%를 차지하는 한정식을 과감히 없앴다. 식당의 메뉴라인을 혁파했다. 고추장파스타 전문점으로 바꿔나갔다.

◆ 고추장파스타 만들기

대구로 내려온 건 일종의 ‘숨고르기’ 절차. 순창댁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고추장소스를 이용해 퓨전파스타 메뉴라인을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신메뉴를 개발할 때 다들 ‘고추장과 파스타는 상극’이라고 말렸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기존 고추장만 갖고는 제대로 된 파스타를 만들 수가 없었다. 파스타에 잘 스며들어갈 수 있게 기존 고추장을 잘 숙성시켜야 한다. 공장표 장 갖고는 얘기가 되지 않았다. 다른 재료를 첨가해서 맵지도 텁텁하지도 않은 최적의 파스타용 특제 고추장을 별도로 만들어야만 했다. ‘고추장이 잘 어울리는 파스타를 만들면 그건 퓨전한식의 쾌거’란 믿음을 가졌다.

남편이 시식을 거들면서 맛의 오차를 줄여나갔다. 첫 개발품을 내놓았다. 젊은층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너무 텁텁하다는 지적이었다. 신세대의 입맛을 무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다소 매콤한 맛이 가미된 파스타를 선호했다. 이 두 계층의 입맛을 고추장소스가 만족시키려면 고추장의 양, 불 조절, 숙성 시간 등 고려해야 될 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손님한테 낼 때도 올리브오일에 고추장소스를 먼저 버무려 파스파 위에 올려서 갖고 가면 퍼지기 일쑤였다.

아이·청년·실버세대가 모두 좋아할 수 있는 고추장파스타.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선 아주 생소한 메뉴였다. 그 메뉴는 온라인상에서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1년 이상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고추장의 텁텁한 맛을 우유 등을 활용해 부드러운 맛으로 숙성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소스에 다진 소고기도 섞어넣었다. 식감과 향을 위해 한국형 대표 허브로 불리는 깻잎을 썰어 고명으로 올렸다. 중앙 공중파는 물론 전북의 방송3사에도 동시에 소개되고 순창장류축제에도 210인분을 출품했다.

고추장파스타에 이어 고추장돈가스도 개발했다. 돼지고기 등심, 고추장, 샐러드, 과일 등이 합쳐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요리에서 핵심 식재료로 주목받는 달팽이(에스카르고)에 고추장을 가미한 달팽이파스타까지 태어났다. 달팽이는 수입 캔에 든 게 아니다. 순창군 풍산면 ‘참살이 달팽이 농장’에서 키운 달팽이를 받아 사용한다. 이로써 ‘고추장 파스타 3인방’이 구축된 것이다. 우렁이가 들어간 강된장은 ‘봄’이란 라벨을 붙여 일부에만 팔고 있다. 심심한 게 아니고 ‘섬섬한 맛’이다. 기본 조미가 잘 돼 있어 초보 주부가 된장국 끓일 때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고추·된장은 매년 시어머니와 함께 만든다. 그 장맛이 무너지면 식당 메뉴라인도 무너진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매주 월요일은 휴일. 일요일 밤 10시면 쉴 틈도 없이 남편이 있는 순창으로 차를 몬다. 순창에 가면 대구에서 사용할 1주일 치 고추·된장을 20여통 갖고 올라온다.

맥주는 독일수제맥주. 서울에 업장을 갖고 있는 장 앤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순창군 인계면에 순창 공장을 만들고 독일맥주를 생산하는데 그중 IPA순창, 라우크비어 밤 베르크, 스위트스타우트 등 4종을 여기서 판다. 안주는 삼진어묵과 함께 부산 어묵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고래사’의 수제 프리미엄 어묵이 어울린다. 포항 죽도시장에서만 판매된다는 ‘개복치’ 살 맛을 닮았다. 중구 경상감영1길 62-5. (053)426-200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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