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사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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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7 08:03  |  수정 2017-04-17 08:03  |  발행일 2017-04-17 제15면
[행복한 교육] 사월의 노래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연둣빛 사월이다. 사월의 학교는 사월을 닮았다. 새학기 적응하기 바빠서인지, 찬바람이 싫어서인지 교실 안에서, 복도에서 시끌벅적하던 학생들은 봇물 터지듯 온 교정에 쏟아져 나와 햇살 아래 바람을 맞는다. 점심시간, 음악이 잘 들리는 스피커 아래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주민들 민원 관계로 음악방송 볼륨을 낮춰 놓음), 삼삼오오 춤도 흐느적거리며 추고 남학생들은 소리 질러가며 좁은 운동장과 뜰을 송사리마냥 떼 지어 몰려갔다고 돌아오곤 한다.

점심시간, 동료의 이야기가 낯설다. 요즘 학생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4교시 마치기 직전 급식당번인 학생이 먼저 나갔는데, 자료를 찾던 수업이라 그 애의 휴대폰이 모둠책상 위에 있었다고 한다. 담당교사는 모둠장에게 갖다 주라고 당부했는데 하교시간 무렵 당번학생이 휴대폰을 못 받았다고 하얗게 질려서 왔다는 것이었다. 모둠장은 지나가던 학생에게 주었고, 또 그 학생은 다른 학생에게 전했는데 누구에게 줬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내방송으로 겨우 찾아주었지만 휴대폰을 베스트프렌드라고 죽고 못 사는 학생들이 그 심부름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 뜻밖이었다. 암튼 다른 학생에게 전했으니 자기는 소임을 다했다고 했다니…. 체육교사의 말이 이어졌다. 수업 전 강당 출입열쇠를 주면 얼마나 전달에 전달을 하는지 열쇠를 되돌려 받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반, 번호, 이름을 확인하고 눈을 마주보면서 열쇠를 준다고 했다.

선생님의 심부름은 선생님의 사랑과 신뢰의 징표라고 여겼던 우리 세대의 여중생 시절, 선생님이 시킨 다른 반 전달사항 연락은 얼마나 설렜던가? 자부심으로 넘쳐났던 심부름 가던 길, 엄마의 잔심부름에 이골이 났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선생님이 나를 보며 부탁하지 않았던가! 숨죽이며 노크를 하면 일제히 쏠리던 70여 명의 눈길, 상급학년 선생님이 엷은 미소로 나를 향해 문을 열던 모습이 꿈결처럼 기억되던 시간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누구는 ○○ 선생님 심부름을 몇 번이나 했다고 질투까지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국민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일전에 어린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미션을 주고 그 과정을 카메라가 따라가며 그 어린애가 겪는 다양한 상황을 재미있게 보여준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을 경청하고 수행하고 작은 약속을 무사히 끝내는 데에 부모의 지지와 격려가 따르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 아이는 부쩍 성장하는 것이다.

교육은 먼 데 있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를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삶의 가치이다. 영어듣기평가가 시작되었다. 중간고사가 버티고 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자녀를 둔 학부모, 자유학기제 때문에 작년 2학기에 정기고사가 없었던 2학년 학부모, 이제 고입을 앞둔 3학년 학부모 모두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집안일도 돕게 하면서 차분히 관찰할 일이다. 관찰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앞산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사월이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 오늘부터 김희숙 대구 조암중학교 교감이 ‘행복한 교육’ 칼럼 새 필진으로 합류했습니다. 김희숙 교감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와 경북대교육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좋은 교육, 좋은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담긴 글을 써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장성보 장학사(전 구암중 교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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