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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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7 08:20  |  수정 2017-04-17 08:20  |  발행일 2017-04-17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다가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오늘 향기박사는 우리 뇌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우리 뇌의 장애 중 여러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일 것입니다. 치매는 아직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할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이며, 일단 발병하면 평균 기대 수명은 7년 정도인 매우 위험한 병입니다. 치매는 유발 요인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알려져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체 치매환자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알츠하이머병)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은 20세기 초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병리학자였던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ysiu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알츠하이머 박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요양시설에서 만난 아우구스테 데테르라는 여성 환자가 51세라는 그다지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단기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이상 인지행동을 보이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이 환자의 남편은 비싼 요양비 때문에 아내를 비용이 저렴한 요양원으로 옮기려 했는데, 이때 알츠하이머 박사는 요양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대신 사후 환자의 뇌를 기증받기로 합니다. 5년이 지나 결국 이 환자가 사망한 후, 알츠하이머 박사는 이 환자의 뇌를 검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츠하이머 박사는 이 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이후 베타 아밀로이드로 밝혀짐)’라는 단백질이 특이하게 침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이 환자의 병명을 ‘presenile dimentia(초로기 치매)’라고 명명했으나, 나중에 이 병을 처음 보고한 알츠하이머 박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알츠하이머병’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1년부터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응집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는 이론이 광범위하게 제창되자, 많은 연구자들은 치매 치료제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생성 혹은 응집을 막는 신약을 개발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 신약개발 연구자에게는 베타아밀로이드는 뭉치면 우리가 죽고 흩어지면 우리가 사는 그런 단백질인 것이죠. 그러나 최근 베타 아밀로이드 응집을 억제하는 전략으로 추진되던 치매치료제 시장에 잇따라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제약사 일라이릴리사가 개발하던 치매치료제가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보이지 못해 실패했고, 머크사(MSD)가 개발하던 치매치료제도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한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연구자가 다양한 방식의 치매치료제를 개발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어, 언젠가는 우리가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은 분명히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의학으로도 치매의 급속한 진행을 조절하면서 인지기능 저하를 지연시킬 수 있는 치료는 가능합니다.

따라서 빠른 시기에 치매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치매의 진행을 조절하면서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많은 연구자들은 치매치료제 개발과 더불어 치매의 조기진단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전 국내외 연구자들에 의해 뇌척수액이나 혈액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탐지하는 조기진단법이 개발되었습니다. 향기박사도 치매환자들이 발병 초기에 냄새를 잘 못 맡게 된다는 것에 착안하여 콧물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탐지해서 치매를 조기 진단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치매환자들을 일반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리하면 요양시설에서 관리하는 것에 비해 더 오랜 기대수명을 누린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즉 치매환자들은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지만 정작 자신이 세상과 격리되어 잊히고 싶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베타 아밀로이드는 뭉치지 못하게 하고, 치매로 힘들어 하는 분과는 함께 똘똘 뭉쳐 살면서 그 분들을 치유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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