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석재, 醜怪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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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7   |  발행일 2017-04-17 제30면   |  수정 2017-04-17
일상사에서 흔히 마주치는
절대적인 미추·선악 구별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석재 서병오 선생 전시회서
미학적인 균형감을 배운다
[아침을 열며] 석재, 醜怪를 그리다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며칠 전 대구미술관에서 ‘석재 서병오’ 전시를 보았다. 처음엔 의무감이었다. ‘대구미술을 열다’라는 부제가 말하듯 대구미술의 효시로 여겨지는 문화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시를 보면서 아무리 서예나 문인화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묵직한 감동이 전해옴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대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노매(老梅) 그림 앞에 섰을 때는 기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특히 그림과 나란히 쓰여진 시에서 ‘醜怪驚人還媚(추괴경인환미무, 추하고 괴이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나 오히려 아름답다)’라는 대목을 읽었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비록 소동파의 시를 인용한 것이기는 하나, 추하고 괴이한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은 매화꽃보다는 거칠고 굵은 나무 기둥과 잔가지들 중심으로 구도를 잡은 후 등걸은 마치 가시덤불처럼 덧붙여 처리했다. 그럼에도 그림과 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아름다움과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사실 서양에서 추(醜, ugliness)가 미학의 범주에 들어온 것은 근대 낭만주의 시대 즈음으로 보는 것이 맞다. 고전주의 시대까지 추는 대체로 미의 대립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추는 악한 것 혹은 비열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당했다. 추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논한 ‘추의 미학’(1853)의 저자 카를 로젠크란츠조차 추가 독립적인 미학이 아닌, 변증법적으로 미를 고양시키는 부속적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던 추가 현대에 이르러 완전하게 독립적인 미학의 범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모더니즘은 추의 승리였다”라는 표현이 이를 증명한다. 앵포름(Informe)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굳이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이에 반하여 동양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와 추를 상대적 개념으로 보았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서 미와 추가 상대적임을 모장과 여희의 일화를 들어 설명했다. “모장과 여희를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가 보면 깊이 들어가고, 새가 보면 높이 날아가고, 고라니와 사슴은 무리에서 도망치니 이 네 부류 중 어떤 것이 천하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안다고 하겠는가.” 즉 아름다움이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대체로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문화적 전통과 맞물려 추하고 괴상한 것조차 미학의 범주로 품었던 것이다. 그러니 11세기 인물인 소동파가 추괴조차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법도 이와 같이 두 부류가 있을 법하다. 과거 서양의 미학처럼 미와 추를 구분하고 무조건 추를 배격하였듯이 옳고 그른 것을 엄격히 구분하여 그른 것은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것이 하나요, 현대 미학에서 추를 미학의 범주로 포함하였듯이 옳고 그른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되 그른 것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존재로 용납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지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나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절대적인 진짜와 가짜, 선과 악, 미와 추가 존재하기나 하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사실은 조금씩 혼재되어 있을 때가 많고, 장자가 말했듯이 서로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진짜와 가짜, 선과 악, 미와 추를 구별하고 그중에 진·선·미를 추구하는 노력을 멈추자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삶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유지하되 혹시라도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혀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늘 있다는 것이다. 즉 추괴(醜怪)조차 오히려 아름답다고 하는 옛사람들의 미학적 균형감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요즘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온갖 것을 파헤치는 네거티브의 홍수 속에서 더욱 그렇다.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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