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허리휘는 결혼비용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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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8   |  발행일 2017-04-18 제31면   |  수정 2017-04-18

조선시대 임금의 결혼식에는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을까. 조선 영조 25년(1749)에 편찬된 ‘국혼정례’에는 왕실의 혼인인 국혼에 드는 예산이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이 기록을 보면 국혼에 관한 일을 맡기 위해 임시로 설치되는 기구인 가례도감은 호조로부터 은돈 500냥, 전문(錢文·돈) 75관, 명주로 짠 피륙 2동, 쌀 100석 등을 받았고, 병조로부터는 전문 75관과 무명실로 짠 피륙 15동을 걷었다. 호조와 병조는 왕실 재정을 관리하던 내수사(內需司)에도 별도로 비용을 전달했다. 이를 현재의 가치로 계산하면 국혼에 쓰인 예산은 6억8천만원에 달한다. 임민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이 1746년 간행된 법전인 속대전을 근거로 계산한 결과다.

우리나라 부자들의 자녀 결혼비용도 단순히 금액으로 따지자면 이에 뒤지지 않는다.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2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부자 1천28명을 설문조사해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자들의 자녀 평균 결혼비용은 아들이 7억4천만원, 딸은 6억2천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자녀의 결혼비용 부담은 부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신한은행이 발표한 ‘2017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를 보면 최근 3년간 결혼한 사람의 평균 결혼비용이 남성은 1억311만원, 여성이 7천202만원이다. 이 가운데 부모가 지원한 금액은 평균 6천359만원이었다. 더욱이 자녀를 결혼시킨 부모의 47.6%가 자녀의 결혼자금 지원으로 노후에 경제적으로 무리가 된다고 답했다.

봄 결혼시즌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지인들의 자녀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N포세대가 회자되는 시대에 그나마 결혼 기회라도 잡았으니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부모들은 결혼비용 마련에 걱정이 태산이다. 30~40대를 ‘에듀푸어’ ‘하우스푸어’로 보내고 퇴직 즈음에 또다시 자녀 결혼으로 허리가 휠 처지니 예삿일이 아니다. 100세 장수시대라는데 이러다가 ‘실버푸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남의 눈을 의식하거나 체면치레를 중시해 빚까지 내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 깨가 쏟아져야 할 결혼식에 빚이 쏟아져서야 되겠는가. 해답은 작은 결혼식이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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