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 조선시대 朝報 발견 “세계 최초 상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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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용기자
  •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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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년(정축년) 11월15일자(왼쪽)와 23일자 조보.
영천 용화사 지봉 스님(영천 역사박물관장)이 조보에 적힌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민간 상업신문으로 1577년(선조 10)에 발행된 조선시대 조보(朝報·조정의 소식 또는 조정에서 내는 신문)의 실물로 추정되는 목활자본이 공개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영천 용화사 주지인 지봉 스님(영천역사박물관 관장)이 최근 공개한 조보는 크기가 가로 40.2㎝, 세로 29㎝ 등 모두 8장이다. 조정에서 발행한 것과 구분하기 위해 민간 조보라 불리던 것이다. 지봉 스님은 “지난 1월 고서 경매사이트에서 입수했다.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으로 알려진 독일에서 발행된 라이프치거 차이퉁(1660년 발행)보다 80여년 앞선 세계 최초의 민간 상업신문”이라고 주장했다.

발행 날짜는 1577년(정축년) 11월 초6일, 15일, 19일, 23일, 24일 등 5일치다. 1개 면은 11행으로 되어 있고 한 행에 22자 내외가 들어가 있다. 6일자 신문에는 공의전(인성왕후의 거처)의 안부와 건강 문제, 15일자에는 ‘소가 대역질(구제역으로 추정)에 걸려 수백 마리가 죽었다’는 등 한성부의 다양한 소식을 담고 있다.


영천 용화사 주지 지봉스님 공개
1660년 獨 일간지보다 80년 앞서
11월분 5일치 8장…1개면에 11행
왕후건강·한성부 구제역 등 다뤄

선조, 조정이야기 민간돌자 분노
목판 활자로 3개월 발행 후 폐간



19일자에는 공의전 안부를 고함, 23일자에는 기상예보와 태봉(胎封·왕실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하면 태실을 봉하는 제도)에 관한 이야기, 24일자에는 형조정량 이정형과 공조정량 남전 등 인사발령에 관한 내용이 게재돼 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왕과 사대부만 볼 수 있는 조보를 발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왕실의 고급정보 등이 수록돼 있어 일반 백성의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지봉 스님은 “당시 조정에서는 법령, 인사, 농정 등에 관한 소식을 담은 조보가 발행됐다. 이번에 공개한 문서는 민간인 30여명이 당시 조정에서 발행한 조보를 구해 일부 내용을 첨가한 뒤 목활자본으로 인쇄해 백성을 대상으로 판매한 상업신문”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조보는 필사본이 아닌 목판활자로 3개월간 발행되다 선조에 의해 폐간됐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1577년 11월28일(음력) 우연히 민간인이 인쇄한 조보를 발견하고 ‘조정에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가 (어떻게) 저잣거리에 돌고 있느냐’며 대신들 앞에서 크게 분노했다. 이어 선조는 민간 조보를 폐간시키고, 발행에 참여한 30여명에게 가혹한 형벌(태형 등)을 내리거나 유배를 보냈다.

조보에 관한 논문을 집필한 김영주 경남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민간에서 인쇄한 조보가 발행됐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동안 실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에 영천에서 공개된 조보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조정의 인사발령부터 사건사고에 이르기까지 선조실록 기록과 일치한다. 또 지질과 활자의 상태, 크기로 볼 때 16세기 후반 것으로 보여 민간 조보의 실물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글·사진=영천 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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