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브라질리안 주짓수 ‘쎈짐’ 포항 양덕지부 한경우 관장

  • 손선우
  • |
  • 입력 2017-04-19 08:40  |  수정 2017-04-19 09:05  |  발행일 2017-04-19 제29면
“나를 일으킨 무술…고난 겪는 이에 전하고파”
20170419
한경우 관장 가족은 무술가 집안이다. 부인과 아들도 각각 무술에 심취해 있다. 부인은 무에타이, 아들은 주짓수를 연마하고 있다. 한 관장은 “무에타이를 하는 아내를 보면 멋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가끔 무서울 때도 있다”며 웃었다.

지난 11일 오후 2시 대구시 달서구 죽전동 브라질리안 주짓수(브라질 유술, 이하 주짓수) 도장 ‘쎈짐’ 본관(옛 대구이종격투기). 도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매트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바닥에 누워 몸을 밀착한 채 양팔과 다리를 감고 엉겨 붙어 맞겨루기를 했다. 20~30대 남성들 사이에 중년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도복에 갈색 띠를 매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한경우 쎈짐 포항 양덕지부 관장(51)이었다. 그는 국내 최대 주짓수 계파 중 하나인 쎈짐에서 최고령 수련자다.

잘 되던 해병대 캠프 망하고
42세의 나이에 주짓수 입문
월드 마스터 챔피언십 등 金
“완력이 아닌 신체 원리 이용
힘 약한 여성 호신술로 최고”


주짓수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전유물로 알려져,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젊은 남성들의 무술로만 인식돼 왔다. 50대,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체력도 부치는 나이에 접어든 한 관장이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들을 당해낼 수 있을까.

“체력으론 격차가 심하게 나지요. 하지만 주짓수는 완력이 아닌 신체의 원리를 이용한 무술이다 보니 적은 힘으로도 센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주짓수를 검색하면 ‘여자도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이라고 나옵니다.”

한 관장이 주짓수에 입문한 때는 42세.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주짓수가 소개된 것을 감안하면 2세대 수련생쯤 된다. 그는 3년 전 지도자 수양과정을 거쳐 포항 양덕에 주짓수 도장을 차렸다. 이후 쎈짐 주관 주짓수 대회 운영위원장을 맡게 됐고, 심판 자격도 갖췄다.

그는 실전대회에서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수련생일 때부터 국내에서 열린 크고 작은 대회에 매번 출전해 상을 받더니, 지난해 8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월드 마스터 주짓수 챔피언십 미디엄 헤비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한 관장은 사업실패를 겪었을 때 주짓수에 매료됐다. 그는 해병대 특수수색대에서 7년간 근무해 온 경험을 살려 사설 해병대캠프를 운영했다. 연매출 10억원의 회사로 키웠고, 삼성과 현대, LG 등 대기업에서 연방 교육 요청이 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2013년 7월, 고등학생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가 벌어진 뒤 회사 문을 닫게 됐다.

한 관장이 난생처음 겪은 좌절이었다. 해병대에서 각 군의 모든 훈련을 수료한 능력을 인정받아 남들보다 승진도 빨랐고, 삼성 특수부대 출신자로 구성된 ‘3119인명구조단’ 창설 멤버로 선발돼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던 그였다. 그만큼 상처도 깊었고 재기도 어려웠다.

한 관장은 주짓수를 배우면서 절망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태안 참사가 벌어진 이후 그 많던 일이 아예 끊겼다. 사고가 난 사설 해병대 캠프는 제가 운영하던 회사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었는데,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면서 “그때 심정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때 주짓수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한 관장은 앞으로 주짓수가 국내에서 생활체육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애쓸 계획이다.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무술이기에 고난과 역경을 겪는 이들이 좌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전파하겠다는 뜻에서다.

“무도(武道)의 장점은 단순히 신체 단련만이 아니에요. 정신력도 수양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아요. 요즘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들이 신문 지면을 도배하잖아요. 밤길이 두려운 여성들은 꼭 주짓수를 배우세요. 주짓수는 체구가 작거나 힘이 약한 여성들의 호신술로 최고예요.”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주짓수= 일본 유술가 마에다 미쓰요(1878~1941)가 브라질의 항구 도시 벨렝에 정착해 전수한 기술이 지금의 주짓수로 발전했다. 주짓수라는 이름은 유술의 일본식 발음인 ‘주주쓰’에서 나왔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소개된 이후 1만명 정도가 주짓수를 수련한 것으로 추산된다. 주짓수는 상대를 바닥으로 유도해 점유, 압박, 조르기, 누르기, 꺾기, 비틀기, 뒤집기 등 다양한 기술로 제압한다. 주짓수는 띠 색깔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흰 띠, 파란 띠, 보라색 띠, 갈색 띠, 검은 띠 순이다.

쎈짐= 주짓수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미국 히간 마차도 주짓수 협회 공식인증 단체로 대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4년 이재훈 관장이 달서구 죽전동에 마차도 주짓수를 설립했다. 전국 36개 지부로 구성되며, 10여명의 종합격투기 선수를 배출해오고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