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문시장을 안전1번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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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9   |  발행일 2017-04-19 제29면   |  수정 2017-04-19
[기고] 서문시장을 안전1번지로
도 기 열 대구중부소방서장

서문시장이 요즘 대한민국 ‘정치1번지’가 된 것 같다. 전통적으로 정치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 여의도에서나 벌어질 법한 풍경이 대구 서문시장에서 보여 지난해 4지구 화재 이후로 또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시장은 단순히 교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 인적·물적·시간적·공간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져 이루어진 삶의 터전으로서 정치·경제·역사·사회·문화적으로 우리 생활에 큰 의미를 차지해왔다. 물품과 그에 따른 정보의 교환이라는 경제적 기능 외에도 시장의 사회·문화적 기능이 서민의 생활양식에 영향을 끼쳤고 민중의 애환이 서린 삶의 총체적 마당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고대 그리스 및 로마에서는 도시국가의 중심부에 있던 광장, 아고라(agora)와 포럼(forum)이 시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곳은 상거래 장소라는 경제적인 기능뿐 아니라 민회(民會)의 장으로서 정치적 역할도 수행하는 장소였다. ‘아고라’는 ‘시장에 나오다’의 의미를 지니는 ‘아고라조(Agorazo)’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장’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아고라가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시민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외세 침략에 맞선 의병의 항쟁과 일제에 항거한 농민 시위가 주로 시장에 일어났는데, 장을 돌아다니는 행상들은 각지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양상을 전하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과거 의병투쟁이 활발했던 지역에서는 횃불시위 등을 벌이기도 했으며, 떼를 지어 며칠씩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위에 참가하는 ‘만세꾼’이 등장하기도 한 곳이 장시였다.

1919년 4월1일 유관순 열사가 고향인 천안에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를 불렀던 곳 또한 아우내 장터였다.

전통시장에 최근 큰 불이 잇따르고 있다. 전 국민이 놀라고 안타까워한 지난해 11월30일 서문시장 4지구 화재는 점포 679개를 태우고 59시간 만에 잡혔다. 최근 대구소방본부는 4지구 화재 피해액으로 469억원을 추산했다. 서문시장은 1922년에 문을 연 이래 10년에 한 번꼴로 대형 화재를 입었다. 이번 4지구 화재는 2005년 2지구에 이은 대형화재라 충격의 파장이 더욱 컸다.

뒤이어 지난 1월15일 발생한 여수 수산시장 화재는 피해 점포 116개, 상인회 추산 피해액은 70억원이 넘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에는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에 화재가 발생해 220여개 좌판과 점포 20여 곳이 소실되는 피해를 남겼다.

이런 대형 화재는 개인 피해를 넘어 사회적 재난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도 재난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하고, 대형 화재를 사회재난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노후된 시설이 많고 점포들이 밀집되어 있어 한 번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전통시장은 상인 36만명이 활동하는 생계 터전일 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 및 유통산업 균형 성장의 보루이기도 하다.

전통시장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화재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수칙 준수가 우선돼야 한다. 전기와 가스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고 화재감지기와 소화기 등 소방시설 구비, 소·소·심(소화기, 소화전, 심폐소생술) 배우기 및 소방출동로 확보도 필수이다. 더불어 화재안전보험 가입확대, 자동화재속보설비 설치, 안전컨설팅 운영 등과 같은 민간과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이러한 실질적·제도적 차원의 대책과 더불어 안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의식을 끌어올리는 것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것처럼 서문시장이 안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광장이 되고 안전에 대해 토론하는 아고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정치적이고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안전문화 확산의 상징으로서 서문시장이 대한민국의 안전 1번지가 됐으면 한다.
도 기 열 대구중부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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