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TK 자유롭게 또 자유롭게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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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9   |  발행일 2017-04-19 제31면   |  수정 2017-04-19
20170419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장미대선을 앞둔 TK(대구·경북)의 정치적 정서다. 정치에디터란 그럴듯한 명함을 갖고 있어 그런지 많이 물어온다. 누굴 찍어야 되느냐, 혹은 누가 될 것이냐고. 지난 선거에서는 스스로 이미 마음을 굳혀놓고 상대의 의중을 떠봤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닌 것이 대략 분명하다. 선택을 놓고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식으로 후보가 다르다는 유권자도 있다.

TK민 전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반기문에서 시작해 안희정, 문재인, 안철수에다, 또 잘 보이지 않던 막연한 보수 후보를 놓고 대구의 표심은 오락가락 부유해 왔고, 지금도 그런 조짐이 확연하다.

흔들림의 기저에는 뭔가 죄의식 비슷한 것이 깔려 있다. 지난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80% 투표에 80%의 득표란 확실한 선택을 한 여운이랄까. 내가 선택한 대통령이 감옥까지 갔다는 일종의 자책감이다. 그건 다시 감정이입이 되어 나까지 감옥 간 느낌으로 동일시한다. 그 근저에는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을 놓지 못하는 심리가 있다.

사실 박근혜를 선택한 것과 위임받은 권력을 잘못 행사한 부분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권력을 위임할 뿐이지, 권력에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나까지 선거에 이런 저런 훈수를 두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측면에서 이제 TK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끈을 놓고, 좀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주문하고 싶다. 장미대선의 선택과 박근혜를 감옥에서 빼내는 것 또한 전혀 다른 사안이기에 그렇다.

인생사에서 그렇지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려운 주제다. 주식 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주식을 사 놓고 끙끙 앓는 경우가 다반사다. 올라도 더 올라갈 것 같아 팔지 못하고, 내려도 오를까봐 팔지 못한다. 주식은 한번 매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딱 두가지 선택밖에 없다. 계속 보유하느냐, 아니면 매도하느냐다. 그래서 투자자는 끙끙 앓는다. 대개 초보투자자이지만….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지평이 열린다. 보유 종목을 파는 것이다. 내가 그 종목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팔고 나면 다시 선택할 수천개의 종목이 널려 있다. 나의 기회, 나의 선택 범위는 엄청 넓어지고,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역으로 매입, 즉 선택은 더 중요하다.

정치철학 개념으로 ‘타불라 라사(tabula rasa)’란 용어가 있다. 백지상태(白紙狀態)란 뜻이다. 태어날 때 어린이의 맑은 두뇌처럼 하얀 백지다. 또다른 바람이 있다면 TK의 장미대선 선택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관성에 매여 끙끙대지 말고, 완전히 머리를 비워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다. 보수의 얼굴을 찍든, 새로운 보수를 찍든, 적폐 청산에 동참하든, 전략적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온전히 TK인(人) 나만의 권리다. 유권자는 새로운 우량주를 선택할 수 있고, 또 과감히 매각할 수도 있다.

이념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현대정치는 실용적 판단을 요구한다. 기왕 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상황이라면 실익을 추구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예를 들면 각 대선후보들의 공약이다. 한때 우리는 선거때마다 ‘청와대의 TK선물,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선거 후 곧장 잊어버렸다.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그 공약이 과연 TK에 확실한 ‘현찰’이 되는가를 판단하는 영리함이 요구된다. 선거에 나온 후보는 생리적으로 후보시절 각인된 것만이 잔상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포커페이스’처럼 TK가 섣불리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건 오히려 큰 장점일 수 있다. 애가 단 쪽은 후보들이어야 한다. 느긋하게 한 표를 들고, 후보들이 깔아놓은 ‘공약 패’를 따진다면, 이번 대선은 어쩌면 TK에게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장미대선, 나는 끝까지 포커 페이스의 얼굴을 한 TK를 보고 싶다. 좀더 실용적 TK이고, 좀더 자유로운 TK다. 선택이란 권리 앞에, 우리 스스로 스트레스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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