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안보와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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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1

‘한국의 대선은 칼빈슨호가 결정할 것 같다.’ 기자의 지인은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 것 같냐는 물음에 이렇게 농담으로 받았다. 심각을 과장하긴 했지만 단정하는 폼새가 우스갯소리로 받아넘기기에는 심각했다. 예삿일이 아니다. 최근 며칠간 호주와 연합훈련을 했던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가 동해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미국 당국자는 예고없는 북한 타격을 시사하고 있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운에 휩싸이면서 풍전등화의 처지다. 이번 총풍은 으레 큰 선거 전에 부풀려지거나 조작돼 온 ‘북풍’과는 판이하다. 태풍이나 허리케인 급의 미국발 북풍이라 할 만하다. 우리의 안보불감증을 일깨우는 이러한 ‘미풍’에 대선 후보들도 화들짝 놀란 모습이다.

일본은 국내 거주 자국민의 대피에 만전을 기하라는 등 두 얼굴의 호들갑을 떨고, 다른 국가들도 주저 없이 한국을 전쟁 위험성이 높은 핫 플레이스로 꼽는다. 유독 우리 국민들만 태연자약한데, 아무래도 양치기 목동들의 거듭된 선거용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는 강고함 덕일 터이다. 전쟁공포에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이처럼 오불관언적 태도는 더욱 그러하다. 그나마 대선 후보들이 북핵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천만다행스럽다. 차기 정부에서 사드배치를 결정해야 한다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배치 불가피론을 들먹이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사드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그럼에도 상황논리에 따라 달라지는 이들의 대북관은 미심쩍고 우려스럽다.

대한민국은 6·25 남북 전쟁 발발 이후 53년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단했을 뿐, 엄밀한 의미에서 종전이 아니라 남북대치의 전시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언제든 개전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처지다. 이같은 형세에서 일관성 있는 대북 안보관은 대칭적 전력 확보를 위한 기초이자 토대일 수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의 안보의식이 이러해야 할진대 대통령 후보의 안보관이 부박(浮薄)하게 흔들리고 선거 득표용이라는 의심을 받아서는 너무나 큰 문제다.

대선 후보들의 대북 안보관이 시험대에 올랐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미·중은 한반도의 안위보다는 자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일에 혈안이 돼 있다. 백척간두의 위험 속 한반도의 안보가 몽땅 트럼프의 입과 결단에 맡겨져 있는 형국이다. 대선 후보들 중 누구도 한반도 전쟁 위험을 경고하고 미국의 자제를 촉구하지 못한다. 대선후보라면 누구나 ‘선제타격은 전쟁이니만큼 절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정상 아닌가. 대통령 후보가 아니면 누가 국민의 안전을 챙기나. 전시 상황의 안보관은 확고하고 정치(精緻)해야 한다. 안보를 1순위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게 다행스럽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이다.

국내 안전 문제도 소홀하게 다뤄지긴 마찬가지다. 대선후보들 저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지만 구체성이 없거나 부족하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부조리와 병인(病因)에 대한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적합한 처방이 나올 리 없다. 국민의 이목이 대선에 온통 쏠린 사이 주목을 받지 못한 우리 거리와 사회는 안전 사각지대다. 여고 자퇴생이 여자 어린이를 엽기적으로 살해하는가 하면 길거리의 묻지마 폭행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출구에서 돌발한 노숙인의 여성 무차별 폭행사건은 지난해 강남역의 ‘묻지마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 혐오’ 논란과 방지대책이 설왕설래했지만 이내 무관심 속으로 묻혔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이처럼 무디고 더디다. 세월호를 보라. 사건 발생 3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맹골 수도에 침몰해 있다. 진상 규명 약속과 국가 대개조를 하겠다던 대통령의 다짐은 최순실 게이트로 마감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닌 모두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고 재발방지를 다짐하는 두루뭉술한 미봉책은 인재(人災)의 악순환에 걸린 대한민국 사건사고의 역사다.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 공약은 인본(人本)을 토대로 한다. 누구나 내놓는 경제공약보다 더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하기에 최고의 척도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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