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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넷’ 최고령 기타리스트 임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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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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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멜로디 들으며 손수 그린 악보가 수천곡…지금도 금요일마다 캠프워커서 연주”

20여년 미8군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편곡자 겸 기타리스트 임영수씨. 아직도 후배와 다양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74세의 현역 기타리스트 임영수.

인터뷰에 앞서 그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서랍장 안에 처박아 둔 수백장의 편곡된 재즈 명곡 리스트를 파일북에서 꺼내 보여준다. 출력된 게 아니라 일일이 음악을 들어가며 펜으로 채록한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원하는 악보를 온라인 등을 통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 미8군 무대에서 오래 잔뼈가 굵었다. 그래서 미8군 무대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지금도 금요일마다 대구 캠프워커 내 클럽인 ‘에버그린’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중2때 처음 기타 잡은 후 60여년 한길
미8군 무대서 잔뼈 굵어 전국 종횡무진

78년 대구 와 생계용 업소 무대 ‘좌절감’
그러던 중 ‘다운비트’ 멤버 영입돼 활력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잡았으니 60여년 기타와 함께 살아왔네요. 여의도·김포공항은 물론 동두천, 춘천, 용산, 의정부, 오산, 평택 등 전국의 유명한 미8군무대는 다 서봤습니다. 그렇게 탁월한 실력은 아니라서 그냥 하우스밴드에 만족했어요. 가장 기억나는 건 화양 하우스밴드 시절 ‘해피 핫 패키지쇼’인 것 같아요.”

재산 목록 1호인 단골 레퍼토리 재즈 악보.
그는 한국 5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불렸던 유일씨로부터 재즈 작·편곡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기본기가 없었다면 미8군무대에 설 수 없었다.

“한동안 제 가슴속엔 가요라는 게 없었어요. 오직 재즈와 팝송밖에 없었습니다. 미8군무대 때문에 그랬죠. 그런데 70년대로 넘어서면서 미8군무대도 많이 위축됩니다. 국내파 뮤지션이 대거 방송국쪽으로 적을 옮겨버린 탓입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78년 대구로 내려왔지만 재즈만 갖고는 밥벌이를 할 수 없었다. 후배가 들으면 “선배님, 어쩌다 그런 데서 다 연주를 하셨습니까”라고 욕 얻어먹을 수 있는, 그런 음습한 곳에서도 생계용 연주를 해야만 했다. 가슴으론 척 베리를 꿈꿔도 현실은 ‘니나노’판이었다. 업소를 나서며 내일은 다시 오지 말자고 하면서도 아이 때문에 다시 기타를 잡았다. 찔끔 찔끔 숨어서 많이도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미8군 재즈시절의 예리한 감각이 뇌리에서 자꾸 증발하던 시점에 다운비트를 만난 것이다.

“말라 죽어가던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죠.”

하나씩 늘어가는 악보. 한창때는 팝송 등 족히 1천여장이 쌓였다. 반주기가 없던 시절이라 웬만한 곡은 멜로디만 들으면 나머지는 파트별로 척척 사인만 주고받으면서 즉흥연주를 할 수 있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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