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종이책과 전자책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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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1   |  발행일 2017-04-21 제39면   |  수정 2017-04-22
빗나간 예언, ‘종이책 종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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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과 종이책. 전자책의 등장과 함께 종이로 된 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날로그’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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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전자책 서비스 전용 단말기.

요즘 들어 부쩍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4차 산업혁명이 가리키는 여러 상황들을 내가 피부로 느낄 일이 그리 많지 않은데,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주목받는 지위에 올랐거나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은 이 용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영남일보에도 필자로 기사나 원고를 싣는 분들이 그렇다. 사연이야 제각각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새 시대가 열리노라, 회개하라”는 식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이쯤이면 나같이 하루 살기에 바쁜 사람에게 4차 산업혁명은 그냥 4차 호들갑에 가깝다고 하면 실례가 될까.

이러한 호들갑 내지 설레발의 한 축에는 제러미 리프킨이 있다. 정확히 몇 년 출간인지, 지금 검색해 보지도 않았지만 대략 2010년대 초반에 나온 ‘3차산업혁명’이 충분히 출판계와 독자들에게도 지적 자극을 줬다. 그는 이외에도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 꾸준한 책 쓰기를 통해 인류 문명사에서 떨쳐내지 못했던 가치나 습성과의 작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앞날을 내다보고 있다.

빈정댈 마음은 정말 없고, 나는 제레미 리프킨이 ‘종이의 종말’이란 주제를 따로 떼어 책으로 쓸 마음을 혹시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것보다 실은 만약 출판된다면 그 책도 종이로 인쇄되어 나올지, 아니면 전자책(e-book) 형태로 나올지, 거기에 더 호기심이 간다. 내가 그 정도 명망을 얻은 입장이라면 전부 전자책으로, 그것도 화끈하게 ‘download free’ 딱지를 붙이고 공짜로 풀어버리겠다. 일단 출판사가 난리 날 테고, 모르긴 몰라도 리프킨 본인이 그럴 마음이 없을 거다. 자기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걸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원래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그렇고, 뭐 그게 사람 본심 아닌가.

디지털 열풍에 제기됐던 종이의 종말
외려 美 전자책 대비 종이책 판매 증가
간편·가벼운 디지털에도 있는 불편함
그런 이유서 여전히 종이 위 활자 건재

책 종류 따라 아날로그-디지털로 양분
전자책일 땐 가독성 떨어지는 학술서적
소유욕 자극 인기웹툰의 종이책 재탄생
전자책과 종이책 상호보완적 공존 시대


우리나라에서 ‘소유의 종말’로 제목을 뽑은 ‘접속의 시대’, 그러니까 ‘The Age of Access’에서 그는 소유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보다 그때그때 빌려서 쓰는 게 훨씬 이득이란 경제논리를 펼쳤다. 당연히 여기엔 사람들이 갖는 소유 욕구를, 예컨대 종말 연작의 후속편에서 다룬 (육)식욕만큼이나 만만하게 여긴다는 비판은 들어 마땅하다. 조짐이라는 측면에 맞추지 말고, 주된 흐름을 놓고 볼 때 지금도 여전히 자동차 리스는 판매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시장이다. 책 대여점은 어떤가? 갈수록 점포 수가 줄어드는 그곳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책은 어떤 종류일까?

최근 접한 뉴스 가운데 미국에서 전자책에 대비되는 종이책 판매 비율이 다시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든 안 보든 막연하게나마 점점 종이책이 사라져 갈 거라고 생각하던 것과 그 뉴스가 전한 사실은 차이가 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봐도 그렇다. 신문에 실리는 이 글도 종이에 원고를 쓰는 대신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다. 잘 썼건 못 썼건 간에 그다음에는 내게 신문사로부터 원고료가 들어오는데, 그 돈도 실재가 아닌 통장에 찍힌 숫자로 확인된다. 이런 방향이라면 이 일의 중심에 있는 책이나 신문 같은 콘텐츠도 자연스럽게 디지털의 세계 속으로 흡수되는 게 맞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게 다는 아니다. 내가 이런저런 노역을 통해 받는 돈이 은행을 통하지 않는 경우,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봉투에 담긴 종이돈을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가령 영남일보 주말섹션부장님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윤 선생님, 이번 원고도 영 아니었지만 아무튼 앞으로 잘 하시란 뜻에서 또 이렇게 봉투를 전합니다”라고 하면, 나는 “아이고, 무안하네요. 커피 값은 제가 치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응대할 게 뻔하다. 이 얼마나 머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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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디지털 세계는 지나간 시대가 품었던 번거로움과 무거움을 간편함과 가벼움으로 대체한다. 참 좋긴 한데, 여기에도 또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 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 위에 찍힌 활자를 읽는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종이책만큼이나 전자책을 많이 사서 읽는 사람이다. 그런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경제학이나 사회학 같은 학술서적을 전자책으로 읽기가 수월하진 않다. 그냥 에세이나 소설은 가독성이 괜찮다. 잡지도 괜찮다. 책도 종류에 따라서 아날로그로, 아니면 디지털로 읽어야 할 게 나뉜다. 요즘 나오는 만화도 종이류가 대세를 빼앗긴 지 한참 되었다. 이 코너에서 내가 웹툰을 진지하게 다룬 일은 없다. 하지만 대중문화 속에서 만화가 과거에 대본소 시절을 지나 만화잡지 시대를 거쳤고, 이제는 모바일 기기로 접근하는 웹툰의 시대다. 그런데 온라인상의 웹툰이 다시 종이책으로 나오는 일이 있다. 이런 현상은 인기 있고 수요층이 확실한 작품을 일종의 소장용으로 생산 소비하는 이치로 해석해도 되겠다.

따지고 보면 재미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종이로 남겨진 출간물은 그 텍스트를 보존하기 위해 디지털 파일로 바뀌는 단계를 겪고 있다. 반대로 디지털로 소통되는 콘텐츠는 한 번 보고 스쳐 가는 신세를 면하기 위해 종이책으로 재탄생한다. 아무리 집중해 읽은 책이라도 내 책장에 꽂혀있지 않으면 그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책의 존재 자체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책 수집가들이 대부분 둘러대는 자기변명이다. 내가 그렇다. 어찌 된 일이, 책을 많이 읽으면 그만큼 똑똑해져야 할 사람들이 읽은 책 그 자체를 잊어버릴 만큼 바보가 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 모순을 설명하는 건 리프킨의 예언과는 달리 결코 종말을 맞지 않을 우리들의 소유 욕구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종이책 대신 전자책 바람이 불어닥친 까닭은 새로운 기계에 대한 책벌레들의 관심이 한꺼번에 쏠렸던 것일 수도 있다. 독서를 절대적인 미덕으로 여기는 이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책에 관한 소비를 절제하지 못하는 애서가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바로 이들을 심판하고 구원하는 과정에 전자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필자인 나의 일이기 때문에 말할 거리가 많다. 온 집에 책을 쟁여놓으면서 겪은 낭패들을 3주 뒤 다음 차례에 털어놓아야 될 것 같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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