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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우울한 현대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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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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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사’ 찰리 카우프만, 듀크 존슨 감독(2016·미국)

동네에 예쁘고 조용한 북카페가 생겼다. 젊고 예쁜 새댁이 꾸려가는 곳인데, 비치된 도서의 수준이 엄청나서 깜짝 놀랐다. 수준 높은 인문학도서로 벽면을 가득 채웠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공간을 채우는 클래식 음악까지도 마음에 쏙 들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교양이 있는 곳(?)이라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를 떨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어여쁜 새댁의 취향이 엿보이는 장식이 있는데,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책 ‘인간실격’으로 한 쪽 벽을 가득 장식했다는 것이다. 자살한 일본의 소설가 정도로만 알던 나는, 새댁의 취향이 궁금하여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 검색해봤다. ‘인간실격’을 애써 읽지 않은 것은 게으름 탓도 있지만, 어두운 정신세계에 빠져들까봐 겁이 나서인지도 모른다.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죽은 이 지독한 허무주의자를 많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좋아할까. 검색을 해보고 나니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장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듯했다. 아, 나도 우울이나 허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도 잘 알고 있다.

세련된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를 보고나니 문득 그 예쁜 북카페가 생각났다. ‘아노말리사’의 주인공인 중년 남자 마이클 스톤은 다자이 오사무만큼이나 지독한 우울과 권태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그를 비교하는 건 무리일까. 하지만 마이클 스톤, 그도 작가인 데다 삶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가 고객서비스에 대한 책을 쓴 성공한 작가라는 건 아이러니다. 그를 만난 인물들은 그가 쓴 책의 방법대로 해서 매출이 늘었다며 그를 추앙한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모든 인물들은 그에게 하나의 목소리로 들린다. 바로 프레골리 증후군(만나는 인물은 모두 한 사람이 변장해 나타난다고 여기는 망상) 때문이다.

그런 그 앞에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가진 인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리사라는 아가씨다. 마치 무채색의 세계에서 혼자만이 색깔을 가진 사람인 듯하다. 마이클은 그런 리사와 대번에 사랑에 빠진다. 맑은 목소리의 주인공 리사는 마이클 스톤의 절망적인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이 남자의 삶은 구원받지 못한다. 비록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여자 리사를 만났지만 말이다. 아마도 인간관계는 그를 구원하지 못하리라. 성공의 자리에서 지독한 우울과 권태에 시달리는 이 남자를 구원하는 건 어쩌면 그 모든 걸 버리는 일인지 모른다. 일도, 가족도, 다 내려놓고 아프리카든 어디든 떠나면 모를까. 처음부터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밖에는.

그의 삶은 죽은 삶이다. 리사를 만나 잠깐 반짝했지만 다시 예전의 죽은 삶으로 돌아가는 마이클 스톤. 이 남자야말로 우울하고 병적인 현대인의 초상이다. 그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이에 비하면 잠깐 스친 사랑을 소중하게 품어 안는 아노말리사(스톤은 리사에게 아노말리(anomaly, 변칙)를 더해 아노말리사라는 새 이름을 준다)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살 줄 아는 여인이다. 스톤에게 들려준 그녀의 노래처럼 햇볕 아래를 거닐 줄 아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놀라운 애니메이션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와 ‘이터널 선샤인’의 천재작가라는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을 놓치지 말기를. 그리고 일에서는 성공했지만 내면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마이클 스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남자처럼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이르기 전에 말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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