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코끼리를 움직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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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4 07:40  |  수정 2017-04-24 07:40  |  발행일 2017-04-24 제15면
[행복한 교육] 코끼리를 움직이는 힘
이금희 <대구 동문고 수석교사>

좀 오래전 이야기다. 서울대에서 면접문제로 “배가 난파돼 당신이 물에 빠졌다. 구명조끼는 하나인데 사람이 둘이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응시한 학생 대다수가 자신이 죽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교수가 천편일률적인 답이 답답해 “너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과학자다. 그에 비해 상대는 흉악범이다. 그래도 구명 조끼를 양보하겠느냐?”고 유도질문을 했지만 답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 면접이 당락을 가르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속내를 드러내어 불합격의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다음은 상황이 가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구명조끼를 내주어도 실제로는 안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윤리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조사하고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고서로 작성하고 발표하라’는 활동 과제를 제시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결과물은 나름 내용도 풍부하고 발표도 잘 진행됐다. “그런데 전혀 감동이 없었어요.” “왜 감동이 없죠?” “모든 학생이 판에 박힌 말들만 해요. 마치 자기들이 성인군자가 된 듯이 말하는데 평상시 학생들의 태도는 그러하지 않거든요. 가짜지요.” 아마도 그 선생님은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진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윤리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란것 같다.

그렇다면 이 수업은 어디에서 어긋난 것일까? 나는 그분께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는 피상적인 상황 대신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사회적 약자라고 느낀 경험에 대해 쓰라고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공부 잘하는 형을 둔 남동생은 가족 관계에서 사회적 약자입니다. 전교 1등을 하는 학생도 자신이 약자라고 느끼는 영역이 분명 있을 겁니다. 신체나 성격 혹은 환경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속상했던 경험들이 있겠지요.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 대접을 받았던 상황을 떠올려 그때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의 폭력성을 적고, 그때 자신의 감정 상태와 어떻게 대접받고 싶었는지를 쓰도록 해보면 어떨까요? 그다음에 내가 누군가에게 사회적 강자가 되었던 상황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도록 유도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제야 선생님 얼굴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제가 제시한 주제가 학생들의 삶과 연계되지 않았군요.” 아이들이 과제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협조하지 않을 때, 혹은 협력하지 않고 개별 학습을 고집할 때, 형식적으로 페이지만 채우고 영혼이 들어있지 않을 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문이나 과제가 적절한가?’

내 경험에 의하면 학생들은 ‘해볼 만한 과제’거나 ‘꼭 내 이야기 같은 과제’일 때 활동에 적극 동참한다. 그래서 활동 과제를 만들 때는 학생의 근접발달영역을 두드리고 수업과 삶의 맥락을 연계시켜야 한다. 이 두 요소는 어떤 외적 보상보다 큰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결과 또한 감동적으로 만들어준다. 무한한 배움의 힘을 가진 코끼리가 스스로 학습과 삶의 중심으로 걸어가게 하는 힘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이금희 <대구 동문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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