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안토고 호수에서 본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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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8   |  발행일 2017-04-28 제22면   |  수정 2017-04-28
대선 후보의 다양한 공약은 예산이 없으면 실현 불가능
빚 의존하면 미래세대에 짐…‘공유지의 비극’ 빠지지 않게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 필수
[경제와 세상] 안토고 호수에서 본 지혜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아프리카 말리의 안토고 호수에서는 매년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 근처 부족민들이 1년에 딱 한 번 허용된 메기잡이를 위해 모두 호수 주위로 모여든다. 긴장된 시간이 흐른 후 약속된 순간이 되면 일제히 호수로 뛰어든다. 어족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메기가 충분히 자라서 산란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잡아먹는 그들만의 독특한 자원관리 방식이다. 정해진 날짜 외에는 다 크지 않은 메기를 잡지 않도록 자체 규약을 정한 뒤 이를 어길 때는 엄격히 책임을 묻는다. 몇 년 전 이 장면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고, 이 아프리카 부족의 지혜에 감동해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을 해결하는 모범 답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은 1968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그의 논문에서, 공유지의 희귀한 자원은 어떤 공동의 강제적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결국 파괴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마을의 초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소떼들을 초지에 풀어놓게 되면 결국 초지가 황폐화된다는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에른스트 페르는 서로 무임승차를 감시하고 신고하게 하는 간단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면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여성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미국 메인주 바닷가재 어장 사례에서 이해당사자 간 협약에 의한 자율조정 방식을 제시하였다. 아프리카 부족의 체화된 지혜가 뒤늦게 이론적으로 정립된 셈이다.

재정(財政)도 대표적인 ‘공유지’로 볼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이지만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한다. 우리 경제, 사회, 문화 구석구석에서 재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빈곤에 아파하는 사람들도 살펴야 한다.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기술과 경제, 사회구조에 대응하는 일도 급한 일이다. 올해 예산안 편성지침에서도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저출산, 양극화 대응이라는 4대 핵심 분야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분야별로 다양한 재정 쓰임새를 확인할 수 있다.

재정이 ‘공유지의 비극’에 빠지지 않게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안고 있는 경제·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에 잘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책과 사업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함은 마땅하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은 주머니 사정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원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면 결국 돈을 빌려 쓸 수밖에 없을 테고, 그것은 우리 아들딸들에게 커다란 짐을 안기게 된다. 오늘의 문제를 내일로 미루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여러 공약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들이 재원대책을 우려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안토고 호수 주변 부족의 사례에서 보듯이 재정에서의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가자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중요할 것 같다. 이 합의를 규칙으로 명문화하고,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재정건전화법’의 입법이 시급한 이유다.

나라 곳간은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피땀 어린 소중한 세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다. 호수의 물고기를 절멸시키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맛있는 생선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어떤’ 물고기를 ‘얼마나’ 잡아야 할지에 대한 철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이는 곧 의도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경제정책과 동시에 중장기적인 추계에 기반한 짜임새 있는 재정 운용을 추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실패할 경우의 암울한 결과는 결국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한 그리스의 사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안토고 호수 주변 부족 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미래 세대의 먹을거리까지 고려한 책임 있는 나라 살림 청사진이 제시되기를 소망해 본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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