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나는 부정한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4-28   |  발행일 2017-04-28 제42면   |  수정 2017-04-28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妄言에 맞서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다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妄言에 맞서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다
20170428

1996년 9월 런던,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은 펭귄북스 출판사와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낸다. 데보라가 그녀의 저서를 통해 자신을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로 언급하고 모욕했다는 내용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국법에 따라 데보라는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는 당연한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녀는 최고의 변호사들로 꾸려진 팀을 보며 안도하는 한편,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판을 준비하는 모습 때문에 종종 마음이 상하고 불안하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 재연이라는 의무와 더불어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 중 하나는 스스로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 고민은 때때로 영상 표현의 수위라는 쟁점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표현의 자유라는 구호와 별개로 도의적 차원에서 그 끔찍한 사건을 직접 겪었던 생존자들의 상처를 덧나게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의 참상과 가해자들의 폭력성을 고발하고자 하는 영화들이라면 어떻게 이 비극에 대한 흥분과 분노를 가라앉힌 채 주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홀로코스트 이슈에 대해 감정적인 경향이 있는 데보라가 자신의 성격과 판단을 내려놓고 전문가들에게 온전히 재판을 맡김으로써 승리하게 된다는 내용의 ‘나는 부정한다’(감독 믹 잭슨)는 이 영화는 물론이요 그동안 유사한 소재를 다뤄왔던 작품들의 고민을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유대인 대학살’법정 공방 실화를 스크린에
‘더 리더’ 데이비드 헤어 각본·레이첼 와이즈 연기 일품
‘쉰들러리스트’‘인생은 아름다워’와 다른 접근 눈길



원제인 ‘부정(denial)’은 거짓의 승리, 진실의 침묵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지만 데보라가 성장을 위해 거쳐야 했던 필수적인 과정, 즉 ‘자기 부정(self denial)’의 의미를 내포한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문제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다시 접근해 논리적인 결론을 얻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내연과 외연, 양면으로 지향했고 성취해낸 지점이다. 리처드 램프턴(톰 윌킨슨), 앤서니 줄리어스(앤드류 스캇) 등 성실하고 재능 있는 변호인단이 피해자를 법정에 세우지 않고도 목표를 이뤘던 것처럼, 자극적인 수단을 가능한 배제하면서 차분하게 사건의 실재와 심각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태도가 영화에 숭고함을 더한다.

데보라와 변호인단이 방문한 아우슈비츠를 담아낸 장면들이 가장 인상적이다. 고정된 카메라는 철조망 너머의 풍경들을 풀 샷으로 비춰준다. 데보라의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도 아우슈비츠의 잿빛 잔재는 침묵을 지킨 채 담담하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이 공간이 기억하고 있는 반세기 전의 참상은 전혀 재연되지 않는다. 극의 후반부, 법정 공방에 등장하는 가스실(이었던 공간) 만큼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되었고 카메라가 상하 혹은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는데, 그럴 때조차 배려와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일례로, 굴뚝에서 가스를 흘려보내 유대인들을 살상했다는 인솔자의 대사 다음 삽입된 단 한 번의 직부감 숏은 공기가 이동하는 느낌을 살리듯 천천히 줌 인 되지만 3초 정도로 짧게 삽입되어 서늘한 감정을 깊이 느끼기 전에 다음 숏으로 바뀌어 버린다. 자칫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직부감 숏을 최대한 절제한 부분이다.

이미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감독 스티븐 달드리)를 통해 나치 전범 재판을 영화화한 바 있는 데이비드 헤어의 각본은 흠잡을 데 없고 레이첼 와이즈와 톰 윌킨슨을 위시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홀로코스트 소재의 영화를 보면서 예술적 쾌감에 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아이러니인가. 그러나 과오가 담긴 역사를 인류의 머릿속에 영속시켜 준다면 이런 작품들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쉰들러리스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나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최근 주목 받았던 ‘사울의 아들’(감독 라즐로 네메스) 등과는 또 다른 접근법을 가진, 주목할 만한 홀로코스트 영화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0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