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현장토크'] 인형뽑기에 빠진 어른들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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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9 07:17  |  수정 2017-04-29 07:17  |  발행일 2017-04-29 제6면
대부분 어른 “뽑기,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
20170429

‘인형뽑기’ 인기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번화가는 물론 동네 곳곳에도 뽑기방이 들어서 있을 정도죠. 반짝 유행하다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하는 분위기입니다.

인형뽑기 하면 대개 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뽑기방에 가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20대 청년부터 40~50대 중년까지 나이 불문입니다. 남녀 구분도 따로 없습니다. 시장 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도, 퇴근후 잠시 들른 커리어우먼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아예 저녁 무렵 뽑기방에 다시 출근 도장을 찍는 직장인도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어른인 데도 아이의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키덜트 문화’로 보기도 합니다. 사행성을 조장하고 중독성이 강해 주의를 요구하기도 하죠. 이번주 현장토크는 인형뽑기에 빠진 어른들을 만나 그들이 왜 아이들의 놀이에 열광하는지 알아봤습니다.


“뽑기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게 됐죠”
“회사생활의 불안감 사라져요”
“사행성? 그저 재미로 하는 것”



“어릴 때 인형을 참 좋아했어요. 잠자리 들 때면 꼭 끌어안고 잘 정도였죠. 뽑기방에 오면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운이 좋아 하나라도 뽑아가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납니다.”(일주일에 한두 차례 인형뽑기방을 찾는다는 30대 직장인 여성)

그녀의 말처럼 뽑기방을 찾는 어른들은 아이의 감성을 간직한 키덜트족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인형뽑기방을 ‘추억을 들춰내는 타임캡슐’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면서 사행성이니 중독이니 하는 말은 ‘억지’라고 웃어 넘겼습니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 뽑힐 듯 말 듯 하다가 하나 딱 뽑으면 진짜 짜릿하거든요. 사행성 조장요? 글쎄요. 그런 문제는 일부에만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통로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맞습니다.”(수성구의 한 인형뽑기방에서 만난 30대 후반 손님)

인형뽑기를 하면서 자녀와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는 가장들도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주말이면 초등학생 막내아들과 동성로에 나갑니다. 인형뽑기를 하기 위해서죠. 뽑기방을 찾아 다니면서 아이와 대화를 참 많이 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집에 들어가도 마땅히 이야기할 공동의 주제가 없었는데, 인형뽑기를 같이하게 되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긴 거죠. 뽑기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동영상도 함께 찾아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친밀감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인형뽑기로 시작된 대화가 아이의 학교생활이나 고민에 대한 주제로 이어져 작은 토론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빠가 친구같다고 합니다. 인형뽑기가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 셈이죠.”(인형뽑기 예찬론자가 됐다는 40대 중반 가장)

일부 직장인에겐 마치 ‘위로’의 대상처럼 보였습니다.

“회사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잖아요. 일을 해도 예전처럼 성취감 같은 것도 없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인형뽑기를 하게 됐는데, 예기치 않은 곳에서 희열 같은 것을 느끼게 됐어요. 인형을 가진다는 생각보다는 적은 돈으로 짜릿한 성취감을 얻는다고 할까요. 회사에서의 좌절과 불안이 이곳에만 오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50대 중반의 직장인)

지난 2월 인형뽑기를 소재로 소설을 쓴 우광훈 작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대구에 거주하는 우 작가 역시 한때 뽑기 마니아였습니다. 그의 소설 ‘나의 슈퍼 히어로 뽑기맨’은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그 역시 인형뽑기를 ‘위로와 치유의 대상’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소설 말미에는 이런 독백이 나옵니다. ‘이 세상엔 정말 완전한 어른은 없어….’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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