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왜 지방정부를 지방자치단체라 할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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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1   |  발행일 2017-05-01 제31면   |  수정 2017-05-01
20170501
박규완 논설위원

# 대한민국 헌법에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117조·118조 달랑 2개밖에 없다. 그것도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표현돼 있다. 법률에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와 중앙언론에서 ‘지방정부’란 용어는 일종의 금기(禁忌)다. 지방자치제가 처음 도입된 김영삼정부 시절 학계와 지방언론에서 지방정부란 말을 쓰기 시작하자 김영삼 대통령과 중앙정부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예 지방정부란 표현을 자제해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민주국가 중 지방의 자치기관을 단체라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일본 헌법엔 지방공공단체로 적시돼 있다. 굳이 형평성을 강조한다면 중앙정부도 공공단체로 표현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앙정부를 공공단체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유독 지방자치기관만 단체라 호칭한다면 그 고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권 국가에선 지방자치기관을 지방정부(local government)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 18대 대선을 두 달 앞 둔 2012년 10월 새누리당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이 부산으로 내려가 대선 때까지 지역에서 선거운동에 전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부산의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현실적 우려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중앙언론에서는 이를 ‘하방(下放)’이라고 묘사했다.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지방에 내려 보내 대선 후보를 지원하도록 했다. 역시 일부 언론에선 ‘민주당의 하방’이라고 보도했다.
하방이란 단어는 중국의 하방운동에서 유래된 말이다. 하방은 중국이 당·정부·군 간부와 지식인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한 운동이다. 간부들의 관료주의와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를 개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1957년 당시 마오쩌둥 국가주석의 지시로 시작됐다. 문화혁명 때 한동안 중단됐으나 1980년대 다시 재개됐다. 하방운동은 도시의 중·고교 졸업자들을 지방에 정착시켜 도시 인구과잉과 취업난을 완화하는 편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시진핑도 아버지 시중쉰 부총리가 권력다툼에서 밀려나면서 어린 시절 하방의 고초를 겪었다.

국어사전에 단체는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일정한 조직체’ 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비해 정부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포함하는 행정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적시돼 있다. 정부와 단체는 이처럼 뜻에서나 어감(語感)에서나 천양지차다. 중앙정부와는 비할 바 아니겠으나 집행부는 물론 지방의회, 지방법원(지원)·지방검찰청(지청)도 있으니 광역시·도와 시·군은 외양(外樣)으로도 정부의 얼개를 얼추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지방정부를 지방자치단체라 하는 건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다. 생뚱맞고 의아하다. 더욱이 보편적으로 단체라 하면 시민단체·경제단체·관변단체·친목단체 등을 떠올린다. 지방정부를 단체로 호칭하는 건 격에도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정확한 어휘 구사가 아니다. 어폐(語弊)의 극치다. 지방을 중앙에 종속시키고 폄하하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지방자치단체란 단어에서부터 관료들의 중앙집권적 마인드와 병폐가 고스란히 노정된다. 지방자치단체란 말이 지방정부에 비해 공적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공공성의 권위를 훼손한다는 점도 문제다.

하방의 한자(漢字)는 아래 하(下), 놓을 방(放)이다. 이때의 방은 해방·석방의 의미라기보다는 추방(追放)의 뜻이 강하다. 지방을 낮잡아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용어다. 하방과 지방자치단체란 낱말의 기저엔 중앙집권(中央集權) 편집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 5·9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개헌은 기정사실이다. 지방분권 강화 개헌은 물론 명칭부터 ‘지방정부’로 못 박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하방이란 말은 영원히 사라져야 할 용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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