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연하의 대통령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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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3   |  발행일 2017-05-03 제23면   |  수정 2017-05-03
[박재일 칼럼] 연하의 대통령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한 해전인 2001년 대구스타디움에서 빅 매치가 있었다. 월드컵에 앞선 대륙간컵(컨페더레이션) 대회로 프랑스와 한국이 맞붙었다. 프랑스는 직전 월드컵에서 우승한 세계 최강. 이른바 ‘아트 사커’를 구사한다는 팀이다. 직접 봤는데 ‘아! 축구를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하고 느꼈다. 그 무렵 개장한 인터불고호텔에서 도착부터 내내 잠만 잤다는 프랑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패스를 했다. 결과는 5-0 참패. 히딩크는 그래도 내년에 보자고 했다.

오래전 프랑스를 가 본 적이 있는데, 에펠탑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렇게 빠른 테제베 창문으로 무한히 펼쳐지는 녹색의 평원이었다. 한반도의 세 배 영토로 생각보다 큰 이 나라는 농사도 예술적으로 짓는가 하는 그런 상상이 스쳐갔다.

오는 9일 한국의 대통령 보궐선거, 장미대선이라 부르는데, 하여간 이에 앞서 7일에는 프랑스 대선이 있다. 결선 투표다.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과 극우의 마린 르펜이 남았다. 여성 변호사 출신인 르펜(48)은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의 후광에다, 당선되면 영국처럼 EU를 탈퇴할 수도 있다고 윽박지르지만, 여론조사는 6대 3 정도로 마크롱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탄생이 유력하다.

마크롱, 1977년 12월21일생으로 만 39세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 출마자격을 불혹(不惑), 만 40세로 규정하니까 한국에서는 아예 출마할 수 없는 나이다. 근데 지금 온 유럽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마크롱의 나이가 아니라, 그의 러브스토리다. 마크롱의 부인은 브리짓 트로뉴다. 마크롱보다 무려 24세 연상인 63세다. 만남도 삼류소설인데 현실이다. 마크롱이 15세 고교 시절, 교사이던 브리짓을 만나 사랑에 빠졌단다. 브리짓은 자녀를 셋 둔 유부녀였다. 마크롱 아버지의 경고로 둘을 떼어놓았지만, 마크롱은 ‘나는 당신과 결국 결혼할 것’이란 집념으로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우리로 치면 불장난이었을 법한 이들의 러브스토리에 정작 프랑스 사람은 무덤덤하다. 정치를 예술로 보는 것인가? 하기야 대통령이 정부(情婦)의 집에서 비밀리 출퇴근하고(프랑수아 미테랑), 재임 중 이혼 뒤 슈퍼모델과 결혼하고(니콜라 사르코지), 정치부 여기자와 동거에다 한밤중에 엘리제궁을 빠져나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애인한테 달려가도(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인들은 ‘그래서 어떡하란 말이냐’로 반응한단다. 리더십이 손상되지 않는다면 사생활은 상관없다는 인식이다.

그에 비하며 한국은 확실히 엄숙주의와 근엄함이 정치문화 곳곳에 배어 있다. 돼지발정제란 엉뚱한 논란에다,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질문을 이제야 던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지도자는 쉽게 용납이 안된다. 솔직함보다는 침묵이 더 우대를 받는다. 나이와 서열도 중시한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꺾인 이유도 행여 그가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것도 작용했을 법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배경에도 홀로 사는 여성대통령의 ‘미용시술이나 딸 논란’을 ‘그게 어떻다는 말이냐’로 받아들일 수 있는 흡수력 부재 문화도 한몫 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미 220여 년 전, 1789년 우리는 상상도 못한 부르주아 프랑스 혁명을 완수한 민주주의 역사를 우리와 동급으로 볼 수는 없다. 근년 들어서는 2003년에 이미 ‘프랑스 공화국은 지방분권 조직에 기초한다’는 헌법 개정까지 한 섹시한 나라 아닌가.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프랑스보다 아예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프랑스 대선은 지난해부터 잇따르고 있는 테러 공포로 계엄령 속에 치러지고 있다. 이민자 폭동이 심각하고, 인종차별과 종교갈등도 만만치 않다. 지나친 국가적 자부심으로 외국인을 향한 오만함도 있다. 100만명 시위대가 지난 겨울 내내 시위하고도 선거를 치르는 한국이 더 나은 점도 있다. 9일 누가 장미 꽃을 받든, 후일 어떻게 평가하든, 한국 정치는 새 역사를 쓸 것이다. 지금 프랑스 축구팀과 경기를 한다면 3-2쯤 될까. 정치 수준도 그즈음에 있을 법하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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