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밀양 위양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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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5   |  발행일 2017-05-05 제36면   |  수정 2017-05-05
물·숲·하늘을 담은 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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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재정은 남면하고 있다. 마루에 앉으면 정면의 협문이 넘치는 경치를 곱게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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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못과 완재정. 밀양 8경에 속해있으며 5월 중순 이팝나무 꽃 핀 풍광을 제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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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못 작은 섬에 자리 잡은 완재정. 세 칸 소박한 정자로 마루엔 기문과 시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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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지 제방의 숲길. 완만한 기슭마다 멋진 풍광과 마주하며 벤치가 앉아 있다.

처음이면서도 일찍이 만난 적이 있는 것과의 재회다. 그것은 물과 숲의 평온, 부지런히 일하는 땅의 평온, 그리하여 동경의 과녁이 되는 평온이다. 만물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유일한 기억처럼 소환되고, 그 순간 나라는 것은 사라져 거대해진다. 거대한 평온이 된다. 스스로가 동경 그 자체가 되는 순간은 인간이 신으로 변하는 시간이라 과장되이 여겨도 좋겠다.

통일신라∼고려 사이 만든 농업 저수지
축조 당시 2㎞이던 둘레는 현재 166m
못 주위의 각종 나무 숲길 경승지 명성

못 안 섬 5개…가운데 섬엔 정자 완재정
孝子 권삼변의 후손이 1900년 지은 3칸
담장 옆 이팝나무 꽃 필 무렵 풍광 으뜸

◆위양, 백성을 위하다

밀양 부북면 위양리의 위양지. 한눈에 그 가장자리가 그려지는 둥그스름한 못이다. 작은 못 가에는 왕버들, 수양버들, 이팝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과 같은 오래된 나무들이 둘러서있다. 봄 내음이 달다. 연둣빛 잎들을 매단 왕버들 가지들이 물속까지 닿아 있다. 버들 꽃들 후루루 떨어져 내려 속눈썹이 간지럽다. 고요하고, 물과 나무와 하늘과 사람들은 하나다.

위양(位良)이란 양민(良民)을 위한다는 것, 즉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위양리는 옛날 양량부곡(陽良部曲)으로 위양못은 양량지(陽良池)로도 불리는데, 둘 다 그 뜻은 같다. 축조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사이로 여겨진다. 기록은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것을 인조 12년인 1634년에 밀양부사 이유달(李惟達)이 다시 쌓았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주위가 4~5리에 이르는 큰 저수지로 수많은 전답에 물을 대었다 한다. 더불어 저수지 가운데에 다섯 개의 섬을 만들고 사방의 제방에는 나무와 꽃을 심어 은자(隱者)들이 소요하는 곳이었다고도 한다. 이후 못의 규모는 점차 축소되어 현재 못 둘레는 166m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저수지와 경승지의 성격을 아우르고 있다.

◆학산 선생과 완재정

동쪽에 있는 세 개의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가운데 섬에 완재정(宛在亭)이라는 정자가 올라앉아 있다. 오래전 이곳에 정자를 짓고자 한 이가 있었다. 선조 때 사람인 학산(鶴山) 권삼변(權三變)공. 임란의 피란길에 맞닥뜨린 왜적이 “이 사람은 조선의 효자다. 그를 죽이면 우리 군의 명성이 실추된다”며 일본으로 끌고갔던 사람 또한 선생의 모친에게 “효자의 모친이니 뒤에 오는 군사들은 침범치 말라”는 글을 써보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학산 선생은 피로인 생활 10년 만에 이곳으로 돌아왔다. 정자를 짓고자 한 것은 그 즈음이 아닐까 싶다. 선생은 정자의 이름과 시문을 일찍이 완성해 놓았다. “못이 있는 지역이 큰 들머리를 빙 둘러 있으니/ 거슬러 쫓아다니느라 하루 종일 외로운 배에 앉았다…한 정자를 일으킬 땅이 넉넉하게 있으니/ 늘그막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갈매기를 사랑하노라.” 선생은 눈먼 노모의 봉양을 마치고 이후 공 또한 이곳에 묻혔으나 결국 완재정의 완성은 이루지 못했다. 완재정은 1900년 그의 후손들에 의해 단정하고 소박한 세 칸 집으로 완성되었다. 그들은 네모진 배를 구비해 왕래하도록 했다.

다리 입구에 수양버들 한 그루와 학산 선생을 기리는 비가 서있다. 물 속 깊이 뿌리 내린 이팝나무와 아직 봉오리 내밀지 않은 수선화, 분홍으로 빛나는 참꽃 등이 완재정까지 가는 길을 장식하고 있다. 완재정 안에서 위양못을 내다본다. 먼 숲길마다 사람의 걸음이 어른거린다. 완재정 마루에 걸터앉아 남쪽으로 열린 협문을 마주한다. 문 속에 물과 숲과 하늘이 가득하다. 담장 옆에 선 이팝나무는 아직 꽃피지 않았다.

◆위양못 산책길

수양버들을 깃발 삼아 위양못을 에두르는 산책로를 걷는다. 못의 북쪽 길은 위양3길, 위양리 들과 위양못을 양팔에 끼고 나아가는 길이다. 완재정은 뒷모습을 보인다. 길가에 집 한 채가 물과 나무와 들과 하늘 모두를 소유하듯 자리하고 있다. 물가 작은 땅에는 파와 감자인지 고추인지 하는 푸성귀가 자란다. 길 모서리에 정자가 서있다. 마주오던 중년의 부부가 정자를 반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멋있어.”

못의 서쪽 길은 나지막한 구릉의 아랫자락을 밟고 나아가는 오솔길이다. 넉넉하게 숲이 그늘져 흙내와 풀내가 짙다. 청소용 포대와 집게를 든 사람들이 사색하듯 지나간다. 오솔길은 못의 남쪽 제방 길로 이어진다. 길은 소나무와 느티나무, 왕버들과 밤나무, 싸-아 싸-아 하고 시원하게 흔들리는 키 큰 산죽 등 수목으로 가득하다. 완만한 기슭마다 벤치가 놓여 있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산책 나온 이들의 휴식이 있다. 수목의 열린 틈으로 제방 아래에 펼쳐진 너른 들을 본다. 싱그러운 초록, 가지런한 고랑이다.

제방 길의 중간 즈음 완재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못 가운데 남쪽으로 열린 협문 속에 사람의 걸음이 어른거린다. 5월이 깊어지면 이팝나무 하얀 꽃으로 뒤덮인 완재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흰 꽃이 쌀밥과 같아 이밥나무 혹은 입하(立夏)무렵 꽃이 피어 입하나무라 한 것이 변음 되어 이팝이 되었다는 나무. 농부들은 이팝나무 꽃의 개화 정도를 보고 1년 농사의 풍작을 점쳤다는 신목이다. 곧 여름이 시작된다. 꽃이 피어 여름을 열면 이곳은 사람들로 들썩일 게다. 젊은 남녀 무리가 여름처럼 온다. 웃는 얼굴은 터질 듯하고, 주고받는 말들은 풍선을 단 듯 날아오른다. 떠들썩한 평온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 나들목으로 나간다. 24번 국도를 타고 시청, 밀양연극촌 방향으로 간다. 부북면소재지를 지나 밀양연극촌 직전에 58번 국도로 계속 가면 도로가에 위양리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지나 왼쪽으로 들어가면 위양못이다. 완재정이 있는 못 동쪽으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위양지 이팝나무는 밀양 8경에 속한다. 대략 5월 중하순 즈음 이팝나무 꽃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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