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오월, 당신을 그리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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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8 07:40  |  수정 2017-05-08 07:44  |  발행일 2017-05-08 제15면
20170508

후배 이야기다. 시어머니가 위독하셔서 중학생 딸과 위문하러 갔단다. 병상에 누워 계신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던 딸이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흐느껴 울더라는 것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가 키워주신 정이 쌓여 저리도 마음이 남다르구나 생각하니 본인도 마음이 찡하면서 딸이 대견스러웠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많이 아팠지?”라고 물었더니 세상에…, 이런 반전이…. “할머니가 숨 가쁘게 호흡을 내쉬는 걸 보는 순간, 꼼지(반려견 이름) 죽을 때 생각이 나서 가슴이 터질 듯 아파 울음을 멈출 수 없었어.” 누워 계셨던 할머니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병석에서 일어날 일이다.

국어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이라고 시작되는 ‘섬집 아기’를 읽기 자료로 제시하면 ‘평화롭다’ ‘아늑하다’ 심지어 ‘정겹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웃으며 잠든 아기, 음표가 갈매기와 구름 위를 날아다니고, 예쁜 엄마가 머리칼을 흩날리며 웃으며 바닷가를 뛰는 장면을 그렸다.

우리 세대와 너무 달랐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아기를 집에 두고 노심초사 일하는 어머니와 바닷가 오두막에 혼자 울다 잠든 아기가 떠올라 대부분 슬픔의 정서를 느낀다. 집안이 넉넉해도, 집에서 살림만 해도 우리 세대의 ‘어머니, 엄마’라는 말에는 지독한 희생과 헌신이 녹아있다. 모진 세월, 남성중심 사회에서 어머니가 여러 자식을 키우면서 혹독한 일상의 노동을 견디며 살아온 것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마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든 이기적 독재자였던 경우가 참 많았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푸념처럼 했던 개인의 고생담에는 얼핏얼핏 격동의 근대사를 그대로 살아온, 불안하고 핍진한 사회의 일면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다 잔소리의 밑밥으로 사용되어 ‘참 맞는 말씀이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그래서 어머니란 말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이리도 뜨거워지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부모가 된 우리도 그렇게 일방적인 희생을 하지 않는다. 세월이 좋아진 것이다. 내가 거두고 함께한 강아지는 애틋하지만 가끔씩 뵙는 귀엽지도(?) 않은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인 것이다.

이번 오월에는 부모 된 우리가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서 자녀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여러 이야기 말고, 교훈 담지 말고. 마음 아팠던 이야기나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악동시절의 이야기가 좋겠다. 사진이 없다면 인터넷으로 그 시절의 배경이 되는 흑백사진을 몇 개 챙기면 더 좋겠다. 물론 많은 순간이 내세울 만한 삶의 깊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시답잖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와 조부모님의 아픔과 숨결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반응이 없어도 좋다. 그래도 먼 훗날 어쩌면 그 이야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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