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親언론 대통령’이 필요하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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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8   |  발행일 2017-05-08 제30면   |  수정 2017-05-08
노무현정부 때 만든 시스템
비서동 못가는 출입기자들
최순실 존재 낌새도 못 채
언론통한 민심과 소통창구
누가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송국건정치칼럼] ‘親언론 대통령’이 필요하다

‘선거의 여왕’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왜 ‘통치의 여왕’이 되지 못했을까.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언론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박근혜’는 싫든 좋든 언론과 국민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언론사마다 박근혜 마크맨(전담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관찰하고 추적했다. 간혹 그들과 식사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눴다. 또 선거가 있으면 전국을 다니며 지원유세를 했기에 바닥민심도 여과 없이 들었다. 그러다 2013년 2월25일 청와대로 들어가면서 그런 채널은 완전히 막혀버렸다. 민생현장에서 국민들을 직접 만나기 어렵게 됐다면 언론을 통해서 민심과 대화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청와대 취재 시스템으론 한계가 있다.

과거 김영삼·김대중정부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1시간 동안 비서동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했다.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민정수석 같은 핵심 참모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민심을 전하고 국정을 들었다. 언론사의 창간기념일 때는 대통령과 직접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선언한 뒤 기자들의 비서동 출입이 전면 금지되고, 개별 언론사와의 대통령 직접 인터뷰도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대신 노무현정부는 청와대 기자실 출입 자격을 대폭 완화했고, 출입기자들이 크게 늘었다. 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을 직접 찾아 입장을 설명했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도 수시로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가졌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정부가 취한 기자들의 비서동 출입금지는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신년 기자회견 같은 극히 공식적인 일 외엔 춘추관에 가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비서동 출입금지라는 취재시스템을 바꾸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언론을 통해 국민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몇차례 신년 기자회견과 대국민담화 발표만 했다. 참모들의 언론 접촉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청와대 조리장도 아는 최순실의 무단출입을 기자들은 전혀 몰랐다. 만일 YS·DJ 시절의 취재 시스템이었으면 최순실의 존재가 기자들에게 감지됐을 거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정리되지 않았을까. 내일(9일)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대선후보들은 저마다 청와대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한다. 2019년까지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이전(문재인), 비서진을 줄여 작은 청와대 지향(홍준표), 세종시에 제2청와대 추진(안철수), 비서실 완전 개방(유승민) 같은 공약들을 제시했다.

사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호도 그렇지만 도심 집무실 주변의 교통 통제, 새 부지 매입 같은 논란거리가 될 요소들이 많다. 여기다 청와대에선 외국 정상급이 방한했을 때 공식 환영식과 오찬, 만찬이 열리는데 대체할 장소도 마땅찮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한 마당에 대통령 집무실 때문에 논란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 이보다는 대통령이 된 뒤 국민과의 소통을 어떻게 할지, 특히 언론을 매개로 민심과 교감하려면 청와대 취재 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다.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은 물론이고 각 분야의 핵심참모들이 기자들과 수시로 만나 민심을 듣고, 국정방향을 설명하는 일이다. 이는 관행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음 대통령도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 뒤에 그들만의 공간에 갇혀버리면 ‘제2의 최순실’이 침투할 수 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 일정을 지배하는 쪽이 문고리 권력이 돼선 안 된다. 민심을 녹인 언론이어야 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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