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탁자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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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0 07:34  |  수정 2017-05-10 07:34  |  발행일 2017-05-10 제23면
[화요진단] 탁자의 초대
김현진

나는 ‘하루의 길이’를 믿는다. 끝이 있다는 것도 믿고 매 순간, 진심으로 산다면 하루는 아주 길다는 것도 믿는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실망하여 참담한 마음으로 시작한 아침이 누군가의 동행으로 어느새 개운한 마음으로 정리되는 저녁이 될 때까지, 절망과 무력감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던 출발이 사랑을 품고 희망으로 돌아서는 여정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나 자신의 가벼운 마음을 흔들고 진정시키며 다시 꿈꾸게 하는, 하루의 길이의 넉넉함을 믿는다.

최근 책을 출간하고 출판사에서 준비했던 독자와의 만남과는 반대 방식으로, 나와 편집자는 독자들을 직접 만나러 가기로 했다. 나의 시간을 잠시 멈춰주었던 그 만남들은 하루의 시간을 무한으로 늘려주었다. 우리는 탁자를 마주하고 지금까지 다섯 명과 각각 마주 앉았다. 마주 앉는 일은, 그 사람의 모든 시간을 이 자리로 불러와 겹쳐보는 일이다. 의미 있는 장소의 한 탁자에서 마주한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진짜 인생을 만났다.

어느 인생도 귀하고 빛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인생도 직선이 없었다.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 모두 책 한 권의 인생살이를 지니고 있었다. 지도의 여기저기를 이동했고, 시간의 앞과 뒤를 새로 그렸고, 스스로 인생의 원을 만들어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타인의 인생을 아는 일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단지 현재의 직업과 얼굴과 이름을 인지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타인의 얼굴을 마음에 새길 만큼 적절한 거리에 마주 앉아 서로의 시간을 함께 멈출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구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 광주, 목포를 거쳐 서귀포의 어느 마을에 건축가로 안착하기까지, 다시 수능을 쳐 건축을 시작한 이가 자신의 언어를 찾기까지, 목적 없는 욕심의 허망함을 깨닫고 사람들과 함께 아주 큰 원을 꿈꾸게 되기까지, 각각의 인생이 채워온 하루의 길이를 다시 펼쳐보았다. 이제야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공간이 주어지면 먼저 탁자를 놓는다. 앉아 쉬고, 밥 먹고, 일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쉴 수 있는 의자를 놓는 것과 탁자를 놓은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서로 마주하기를 청하는 탁자는 서로의 시간을 함께 멈춰준다. 현재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까이 마주할, 정신과 공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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