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통령다운 대통령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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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1   |  발행일 2017-05-11 제31면   |  수정 2017-05-11
[영남타워] 대통령다운 대통령

첫 일성(一聲)은 기대감을 던져 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취임 선서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밝혔다. ‘통합의 대통령’, 사실 역대 대통령의 단골 취임 멘트지만 매 번 들어도 신선하게 와닿는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지금 문 대통령의 마음과 어깨는 그 누구보다도 무거울 것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첫 집무를 시작했지만, 눈앞에 놓인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치지형에 신산(辛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을 게다. 당장 신임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 절차와 이어질 장관 인사청문회에 생각지도 못한 파고(波高)가 밀려 올 수도 있다. 대통령과 국회가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시작부터 국정운영에 삐꺽음이 날 수 있다. ‘꽃길’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시밭길’부터다. 문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한민국호(號)의 새로운 선장이 된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크다.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대통령다운 대통령’의 품격부터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는 직전 대통령의 무능·무책임·무개념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을 되살려주는 일이다.

우선 중용(中庸)의 가치를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 중용은 결코 어정쩡한 태도가 아니다. ‘생각이 깊은’ 판단과 실천이다. ‘내 편, 네 편’으로 대표된 직전 정부의 이분법적 인사관행부터 혁파해야 한다. 여야, 좌우, 지역, 계파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가 필요한 인재를 발굴하는 데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때마침 취임 첫날 발표된 국무총리와 청와대 일부 참모의 인선은 문 대통령이 앞서 밝힌 ‘탕평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속 인선에서 TK 인사가 배제된다면 ‘통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토론을 즐기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 이제 더는 과묵한 것이 지도자의 품격이 될 수 없다.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발제·반론·재반론식의 토론을 자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국가 중대사가 토론에 부쳐지면 4시간은 기본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나라 일꾼들의 진지한 토론이 끊이지 않는다면 국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염치(廉恥)를 아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 나라를 경영하다 보면 논란과 혼돈의 정국에 직면할 일도 비일비재하다. 잘못이 있다고 판단되면 주저말고 사과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부득이하게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엔 더욱 그래야 한다.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가능한 자주, 직접 국민을 찾아 대화의 시간을 갖고 힘들고 가려운 점이 뭔지를 읽어내야 한다. 직전 대통령의 ‘불통 정치’는 훌륭한 반면교사다.

‘논어’ 안연(顔淵)편에서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갖추고, 군비를 튼튼히 하며,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세 가지 일”이라면서도 “단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버려선 안 될 것은 ‘신뢰’”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신뢰를 얻으려면 국민을 근본으로 삼는 길 외엔 없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 힘으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어떤 시민인가. 자신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이다.” 과거 참여정부 장관을 지낸 작가 유시민이 그의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역설한 내용이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되는 것, 한편으론 우리 국민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한다. 문 대통령의 ‘광화문 대통령 시대’ 일성이 혹여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도록 국민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이창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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