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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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2   |  발행일 2017-05-12 제36면   |  수정 2017-05-12
우리나라 最古 취수탑이 홀로 지킨 79년 ‘금단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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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수원지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취수탑. 수원지는 1932년 완공된 이후 79년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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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수원지의 취수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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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마루로 오르는 하늘계단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댐 양쪽 가장자리에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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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양쪽으로 히말라야시다가 도열해 있고 그 안쪽으로 편백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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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마루의 반송. 장정 20명이 어깨에 메고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키 낮은 철 대문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사람이 들고 나는 쪽문에는 청년들이 지키고 서 있다. 조금이라도 큰 배낭을 가졌다면 관리실 옆 보관함에 잠시 넣어 두어야 한다. 어떠한 소소한 음식물도, 돗자리도 금지다. 화장실 하나, 음수대 하나가 있을 뿐 휴지통 하나 없다.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나가는 곳, 이곳은 ‘유원지가 아니라 수원지’, 법기수원지다.

1932년 완공 동시에 ‘상수원 보호’ 폐쇄
높이 21m·길이 260m에 저수량 151만t
2011년 개방 후에도 부산 일부 식수원

건설 당시 심은 7種 644그루 울창한 숲
빽빽한 긴 그림자로 어둑어둑하고 서늘
둑길엔 장정 20명이 메고 옮겼다는 盤松


◆금단의 세월 79년

들어서자마자 압도되어 버린다. 거대한 히말라야시다들이 빙 둘러서 나를 내려다본다. 마치 사람을 처음 보는 듯, 신기한 것을 보는 듯 나를 본다. 링에 오르자마자 훅 들어오는 펀치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이 압도에서 빠져나가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왼쪽은 정면승부, 히말라야시다의 길이다. 오른쪽은 벚나무 길, 잠시 빈틈을 찾아 평온한 숨 고를 수 있겠다. 저기 벚나무 숲 연두의 환한 빛은 더없는 유혹이지만 그러나 늘 택하는 것은 정면승부다.

양 옆으로 히말라야시다가 하늘을 찌르며 도열해 있다. 너무 높고, 너무 굵고, 너무 곧아서 만화 같다. 그들 뒤 좌우 숲속에는 편백나무가 총총히 들어서 있다. 역시 너무 높고 너무 곧다. 숲은 빽빽한 긴 그림자로 어둑어둑하고 서늘한 기운이 짐승처럼 감돌고 있다. 그러나 길은 넉넉히 넓어 한 걸음 물러선 압도다.

법기수원지는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저수지로 1927년 착공해 32년에 완공되었다. 당시에는 국가적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완공과 동시에 상수원 보호를 위해 문이 잠겼고, 2011년 7월 개방되기까지 79년간 철저하게 금단의 땅이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댐 건설 당시 심어진 것으로 수령이 80년에서 130년 이상이다. 총 7종 644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었는데 편백나무 413그루, 히말라야시다 59그루, 벚나무 131그루, 추자(가래)나무 25그루, 반송 14그루, 그리고 은행나무와 감나무가 각각 1그루 있다. 대단한 규모도 아니고, 나무 둥치들 사이로 댐 사면이 언뜻언뜻 보이는데도 숲은 깊다.

길은 저수지 댐의 왼쪽 끝에 닿는다. 그곳에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관사로 쓰였다는 건물은 지금 화장실로 개조되어 있다. 댐 사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계단이 보인다. 정면에서는 다만 가느다란 금으로 보이던 것이 실상 좁은 계단이었다. 이름은 ‘하늘계단’, 124개의 계단이다. 처음부터 있었다는 이 계단은 현재 출입 금지다. 대신 댐의 가장자리에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숲에 치우쳐 오르는 그늘 많은 길이다.

◆원시림에 둘러싸인 법기수원지

물이다. 고요하게 고인 물이다. 둘러선 산과 하늘도 물에 고여 있다. 관리선 한 척이 외롭게 정박해 있고, 저 멀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하늘색 취수탑이 제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댐은 흙으로 쌓았단다. 높이 21m, 길이 260m, 둘레 6㎞, 총저수량은 150만 7천t에 달한다. 둑길에 판석이 깔려 있어 흙내는 나지 않는다.

댐 마루 둑길에는 밑동에서부터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져 자라는 반송(盤松) 일곱 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 130년 정도 된 법기 반송 칠형제다. 저수지 축조 당시에 심어놓은 것으로 나무를 얽어맨 밧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른 20명이 어깨에 메고 여기 마루까지 옮겨왔다고 한다. 햇살 고스란한 둑길에 반송이 그늘을 드리운다. 우듬지는 좀 더 하늘과 가까워지려 부쩍 솟았고, 아래 가지는 좀 더 물과 가까워지려는 듯 길고 낮게 드리워져 있다. 굵은 가지가 낮아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솔향기가 달다. 아무도 없는가 했더니 반송 아래 우아한 그늘마다 사람들이 고여 있다.

현재 법기수원지는 전체 68만㎡ 중 댐과 수림지 2만㎡만 개방되어 있다. 원래는 저수지 둘레길 약 3.4㎞가 2차로 개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방 이후 하루 방문객이 최대 3만 명을 넘어서면서 차량 정체와 주차문제, 생태계 위협 등 여러 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둘레길의 개방은 보류되었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원시림, 아주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저 골짜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그러나 저곳은 여전히 금단의 땅이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수원

둑길 끝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댐 아래에 석조 건축 구조물이 보인다. 상방을 아치모양으로 꾸민 입구에 철문이 단단히 잠겨 있다. 얼굴을 바짝 대어보니 차가운 공기가 새어나온다. 취수터널이다. 상방 위에 테두리까지 조각한 석판이 부착되어 있고 거기에 ‘원정윤군생(源淨潤群生)’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는 의미다.

댐 완공 때 사이토 마코토가 쓴 글이다. 그는 일제시대 제3대와 5대 조선총독을 지낸 사람, 독립투사 강우규 의사의 폭탄 투척에도 살아남았던 인물, 그리고 우리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법기수원지는 비록 일제의 주도하에 건설되었지만 건설의 주역은 강제 동원되었던 우리의 선조들이다. 맨손으로 흙을 돋우고 맨손으로 저 나무들을 심었을 그들이다. 나무들이 하늘만 보며 자라는 동안 우리는 독립을 이루었고 사이토 마코토는 1936년 일본 군부의 급진파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되었다.

현재 법기수원지의 물은 양산의 창기마을과 부산 금정구의 선동, 두구동, 청룡동, 남산동 일대 약 7천세대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취수터널 근처에서 물소리가 콸콸 들린다. 79년간의 금지된 시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고, 일본 황족 부부가 이곳에서 새소리를 들었다. 모두의 금지는 아니었다. 이곳을 생각만 한 지 3년이다. 이상하게도 내내 ‘법기원수지’라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법기수원지.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 고속도로, 혹은 경부고속도로 양산IC로 나간다. 양산시청 방향으로 가다 양산대학 방면 60번 국도를 탄다. 양산대학과 법기터널을 지나 법기교차로에서 법기리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 법기수원지 초입에 식당과 카페 등이 있고 수원지 정문 오른쪽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법기수원지 개방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음식물 반입 및 취사행위는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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