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익산 미륵사지 미륵산과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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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2   |  발행일 2017-05-12 제37면   |  수정 2017-05-12
마한·백제인이 꿈꾼 미륵세상…그 염원을 담은 寺·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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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서금당지에서 바라본 복원된 동탑과 후면 미륵산의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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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사자사에서 내려다본 한반도를 닮은 금마지의 아련한 풍경.
봄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에 누워 잠들고 싶은 게으른 휴일임에도 무슨 도깨비에 홀렸는지,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익산으로 차를 달린다. 며칠 전 저녁 TV에서 백제 문화는 ‘신이 내린 솜씨’라는 자막을 보고 섬광처럼 공주 무령왕릉과 익산 미륵사지, 그리고 부여 정림사지 오층탑이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아갔다. 그러나 한꺼번에 다 갈 수 없으므로 미륵사지를 먼저 답사하기로 하였다. 익산은 너른 황토평야와 인근을 지나가는 금강, 그리고 군사방어에 적합한 미륵산이 있어 일찍이 마한의 도읍지로 역사의 전면에 부상했다. 어렵게 도착한 미륵사지는 미륵신앙의 메카답게 봄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르고, 발굴한 유물석재가 군데군데 가지런히 놓여있다. 동양 최고 최대인 동원석탑도 복원되어 장엄하고 거룩한 경관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역사는 가는 게 아니라 다시 오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미륵사 창건을 이렇게 적고 있다. 미륵사 부근 오금산에 홀어머니와 마를 캐며 살던 마동이 있었다. 후에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하고 백제왕이 된다. 30대 무왕이다. 왕이 된 무왕은 왕비와 함께 지금 미륵산(옛적에는 용화산) 사자사에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신기한 일을 겪는다. 지나던 연못에서 세 분의 미륵부처가 나타난 것이다. 놀란 왕비는 무왕에게 미륵부처를 위한 절을 지어달라고 청한다. 이 청에 의해 만들어진 절이 전, 탑, 낭무를 갖춘 미륵사다. 미륵사를 세우는 데 당시 백제의 건축과 공예 등 최고의 기술이 발휘되었으며 신라에서도 기술자를 보내 주었다고 한다.

‘신이 내린 솜씨’ 國寶 미륵사지 석탑
서동·선화공주 관련된 창건 설화 흥미

절터 돌아나와 오른 미륵산의 사자암
암자 앞 가까이엔 한반도 닮은 ‘금마지’
정상 미륵산성선 일망무제 익산 정경

한강 이남 최대인 구룡마을 대나무 숲
바람에 댓잎 서걱서걱…걸음은 신바람


◆미륵사지와 미륵산의 힐링 트레킹

미륵사지에는 국보 제11호인 익산미륵사지 석탑(14.24m)과 당간지주, 금동향로, 석등 하대석이 있다. 그중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사각이고 9층이었지만, 현재는 6층까지 남아 있으며, 2001년부터 해체 보수하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석탑의 출발을 보여주며, 당시 백제인의 건축기술, 즉 신이 내린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중요문화재다. 미륵사지를 돌아나와 미륵산으로 간다.

포장길 우로로 산길이 나타난다. 산은 봄에 익어 있다. 오솔길로 올라간다. 봄을 열고 들어서는 미륵산은 꽃나무 향기와 부드러운 새순들의 기지개로 노글노글하다. 봄은 꽃가루 같은 고양이털을 미끄럼 타며 온다. 봄은 옅은 립스틱을 바르고 화사한 밑 화장을 한 여인의 얼굴처럼 온다. 이제 전국 어느 산도 대개 그렇지만 미륵산도 산림이 우거져 트레커의 전신을 상쾌하게 한다. 산 능선을 만나자 길이 대폭 넓어진다. 로마전차가 지나가도 되겠다. 봄은 야릇한 힘을 가졌다. 아직 경사가 덜한데도 진땀이 홍건하다. 가파른 길부터는 산길 폭에 맞춰 데크 계단을 잘 만들어 오르기가 수월하다.

몇 차례나 땀을 훔치면서 이름 있는 고찰 사자암에 들른다. 사자암은 백제시대 사자사였다. 사자사는 미륵사보다 앞서 세워진 절이다. 사자암 입구 바위 위에 사자동천(獅子洞天)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사자가 한 번 포효하면 뭇 짐승이 공포에 오줌을 저리며 사지를 오그린다고 한다. 바로 자기 생명에 대한 전율이며 확인이다. 사자의 포효, 즉 사자후는 부처님의 한번 설법에 뭇 악마가 굴복 귀의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사자사는 사자후가 있는 절이다. 그리고 동천은 산수가 에두른 절경을 말함이니 사자동천은 천연 절경에 세워진 부처님 설법이 악마를 굴복시키는 절이다.

요사채에 개 두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컹컹 짖어대며 이리저리 분잡하다. 사자암에서 전망을 바라보니, 한반도를 닮은 못이 있다. 금마지다. 생김이 한반도와 흡사한 못은 조국에 대한 사랑의 척도를 반문하게 한다. 사자암을 돌아나와 미륵산 정상에 선다. 복을 빌면서 쌓은 돌탑이 있고, 그 뒤로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미륵산성에 대한 안내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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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기준으로도 불리는 복원된 미륵산성의 유적 풍경.

◆미륵산성과 베데스타 기도원

미륵산 동쪽 골짜기에 있는 이 성은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는 준왕, 즉 기준(箕準)의 고사와 관련돼 기준성이라 부른다. 혹은 백제 무왕 때 세운 성, 또는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을 공격해 항복받은 성이라고도 한다. 기준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이고 한왕은 마한의 왕이라는 뜻이므로 마한은 고조선의 맥을 잇는 우리 고대역사의 원목처럼 가슴에 심주를 박는다. 미륵산 정상(430.2m)은 압도적인 뷰 포인트로 사방팔방이 속시원하게 조망되며, 고대국가의 역사터를 이모저모 눈에 담는 절정의 전망대가 된다. 정상에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간다. 조금만 내려가면 성벽을 밟고 가는 길이고, 마한부터 지금까지 역사의 편린들이 발길에 걸린다. 조금 더 내려가면 근자에 보수한 성벽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위용을 자랑한다. 성벽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면 둘레길이다. 활짝 핀 매화꽃 그늘을 지나고, 베데스타 기도원을 지난다. 애면글면 기도가 필요하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흐르는 이마의 피가 내 죄를 적시고 그래서 그 죄의 싹에서 부활의 꽃이 필 수 있는 기도가 필요하다. 정녕 지금은 여기 외시골에서 켜는 기도의 베데스타 촛불이 필요하다.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런데 아무튼 우리의 이 모습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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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둘레길 가운데 백미에 해당하는 구룡마을의 수려한 대나무 숲길.
◆구룡마을 대나무 숲길과 미륵사지 트레킹

드디어 구룡마을 대나무 숲에 닿는다. 숲길은 정지가 잘 되어 있다. 바람에 댓잎이 서걱거리면 대금산조 가락을 타고 걷는 것 같다. 발걸음에 신바람이 난다. 미륵산 둘레길에서 백미에 속하는 구간이다. 한강 이남 최대 대나무 군락지인 이곳은 왕대가 주수종이고 오죽 또는 분죽이라 부르는 솜대도 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역시 왕궁이 있었던 익산에 왕대밭이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여기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제품은 우리나라 3대 5일장의 하나인 강경으로 팔려 나간다. 익산 경제의 중요한 소득원이다. 그러므로 여기를 생금밭이라 부르기도 한다. 트여 있는 길을 죄다 걷는다. 그러나 그 환상적인 대나무 숲도 끝나고, 논길을 지나 작은 산자락 두 개 넘어 화산서원에 도착한다. 원래는 예악 종장 김장생 위패를 모셨으나 후에 송시열을 추가하여 모신다는 안내를 보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화산서원 뒤로 가는 산자락길은 그야말로 다디단 오솔길이다. 길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어쩌면 이 길 종점에 미륵세계가 있는지 모른다. 마침내 길이 다하고 미륵사지 널따란 풍경이 드러나고 아름다운 동원석탑 가까이로 내려간다. 미륵사지 구석에 통일신라시대 기왓가마가 있어 다가가 관람한다. 다가오는 미래세계에 오신다는 미륵불, 오셔서 단 세 번의 설법으로 고통이 없는 미륵세계를 건설하신다는 미륵불이 온다는 미륵사지를 걷는다. 모든 인간을 자신과 같은 미륵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미륵불, 그분이 빨리 오시기를 기원한다. 봄날이라 그런가. 싱숭생숭한 감정에 신동엽의 금강 구절이 생각난다.

“부여로 가는 길/ 마한, 백제의 꽃밭/ 금마를 찾았다./ 언제였든가./ 가을걷이 손 틀고/ 재작년 늦가을/ 진아는 하늬의 손가락 끼어/ 미륵사 탑 아래/ 그림으로 서 있었지/ 그 날은 저 탑 날개/ 이끼 위/ 꽃 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신동엽이 찾은 미륵사지는 가을과 진아라는 여인, 미륵사 탑과 꽃 잠자리가 등장하지만 미륵사지는 봄날, 연분홍 치마가 분분하게 흩날리는 봄날, 봄 아지랑이 사이로 미륵부처 세분이 걸어올 것만 같은 봄날에 찾는 것이 제격이지 않겠는가. 봄날의 미륵사지는 영락없는 미륵세계였다. 과연 내 생애 동안 미륵부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겠는지. 우린 먼지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영원 속을 여행하는 나그네인 거겠지. 그 미륵세계도 초원의 여행에서 머무는 모닥불 피워놓은 야영지 같은 것, 삶도 죽음도 영원한 여행의 길에서 무상 반복하는 사이클 같은 것을.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미륵사지~미륵산 둘레길~미륵산길~사자암~미륵산 정상~오른쪽 미륵 산성길~미륵산 둘레길 만남~베데스타 기도원~구룡마을 대나무숲~우물정자~화산서원~통일신라시대 기왓가마~미륵사지(원점회귀)

▶내비게이션 주소: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주위 볼거리: 보석 박물관, 익산 왕궁리 유적지, 금마관광지, 나바위 성당, 웅포관광지, 익산 쌍릉, 고도리 석불입상

▶문의: 익산시청 문화관광과(063-859-5778), 미륵사지 관광안내소(063-859-3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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