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새 정부 한 주 - 善意만으로는 안 된다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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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6   |  발행일 2017-05-16 제30면   |  수정 2017-05-16
품성에서 묻어난 따스함
‘착한 재인씨’로 출발 산뜻
국정 능력도 십분 발휘
‘진보의 함정’을 벗어나
‘유능한 문재인정부’ 되길
[화요진단] 새 정부 한 주 - 善意만으로는 안 된다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소풍을 가면…, 버스를 타고 내려서는 산길로 올라가게 돼 있죠. 다리 아픈 친구가 뒤처진 거예요. 많은 학생들은 그냥 지나갑니다. 그때 문재인이 그 친구하고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걸어갔습니다. 친구가 ‘더 가기 힘드니 너라도 먼저가라’고 했습니다. 재인이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같이 가자’며 업어버린 거예요. 가다가 주저앉고 도시락도 같이 까먹고 하염없이 걸어서 도착했는데 30분 만에 돌아오게 됐어요. 그때서야 친구들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소풍을 즐기는 동안 문재인이라는 친구는 친구를 업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죠. 돌아올 때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50명이나 되는 같은 반 친구들이 50분의 1씩 자신의 등을 내어줍니다. 아픈 친구를 위해 업고, 또 다른 친구가 업고…. 경남고 시절 문재인이 만든 아름다운 신화입니다.” 한반 친구 이윤택(연극 연출가)의 ‘착한 친구 문재인’ 이야기다.

착한 재인씨, 유쾌한 정숙씨.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가 돋보인 한 주였다. ‘착한 문재인’ 이미지는 억지 연출은 아닌 것 같다. 오랜 습관과 품성에서 묻어난 것으로 국민들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따스하고 겸손한 자세가 몸에 밴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에 국민들도 안심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쌓이니 국정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평소 검찰권력을 비판해온 한 여검사도 “며칠 사이 대한민국의 공기가 바뀌었다. 검찰의 공기도 바뀌었다”고 했다. 국정 동력은 국민의 신뢰 속에 더 큰 힘을 얻는 것 아니겠는가.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문재인정부가 더 이상 ‘착한 이미지’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지 정치’는 새 정부 시작과 함께 허용된 허니문 기간에나 가능한 일이다. 대선 TV토론에서도 많은 국민은 느꼈다. 어눌하지만 문재인은 착하고 정직한 것은 분명한데, 그가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들은 뭔가 딱 부러지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로 가득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선거는 그리 할 수 있지만 국가운영은 그것만으로 안 된다. 희미하던 것을 걷어내야 한다. ‘선한 의지’를 넘어 그것을 구체화하는 정책과 액션플랜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리해야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이미지 정치’가 자칫 ‘가치(價値)정치’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진보가 잘 모르는 진보의 함정이 있다. 스스로 정의롭고, 올바르고, 선하고, 합리적이고, 약자를 배려하고, 불의를 참지 못한다는 강한 자부심이다. 간혹 이런 가치를 독점한다는 비판도 받지만 진보의 장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으로 인해 곧잘 함정에 빠진다. 초기 노무현정부가 빠진 수렁이다. 정치는 이념과 가치로 가능하다. 그러나 통치는 정치하듯 해선 안 된다. 나만 선이고 상대는 악으로 보는 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자세가 아니다. 국가운영에 이념과 가치가 강조되면 통합은 불가능하다. 통합은커녕 가치가 실현되기도 전에 가치 논쟁으로 온 나라가 풍비박산 난다. 노무현정부 때 익히 경험한 바이고, 작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념 프레임에는 그런 경향성이 잠복해 있다. 거기에 불 붙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특히 진흙탕 싸움이 일상화된 정치영역에서 ‘착한 사람’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취약점을 안고 있다.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란 위험에 항상 노출된다. 높은 기대는 오히려 정반대의 평가로 쉽게 바뀐다. 세상사에도 이런 이미지 반전은 다반사다. ‘착한 사람’이 사소한 잘못에도 동네북 신세가 되는 건 보통 사람들에게도 부지기수의 일이다.

대통령직은 국정과 나라를 책임진 자리다. 국민에게 착한 이미지로 다가가는 것과 대통령의 소임은 다르다. 결국의 평가는 국정의 성과다. 착하지만 정의롭지만, 무능한 진보? 오랜 시간 진보를 괴롭힌 뼈 아픈 비판이다. ‘선의(善意)만으로는 안 된다’는 충고는 ‘이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능력 있는 문재인정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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