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한민국과 대구경북은 다른가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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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8   |  발행일 2017-05-18 제31면   |  수정 2017-05-18
[영남타워] 대한민국과 대구경북은 다른가
변종현 경북부장

선친이 살아계셨다면 여든이 된다. 30여년 전 군사정권을 향해 돌을 던지던 학창 시절, 아버지는 ‘데모하지 마라’ ‘거리에 나와 데모하는 X은 모두 빨갱이다’ 등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 단속에 나섰다. 당시 공중파 방송의 9시 뉴스는 ‘땡’ 하고 시보(時報)를 알린 후 거의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됐다. 어느 날 그 ‘땡전뉴스’ 때문에 부자간에 격렬한 언쟁이 벌어졌다. 군사정권을 두둔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세대 간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정치적 벽’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버지 세대가 가고 나면 한국사회는 진보할 것이라고.

세월은 흘러 한 세대가 지났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들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탈(脫)권위주의 시대로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영원히 집권할 것 같았던 보수당이 실권(失權)하는 장면에서는 묘한 흥분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국민적 정치의식의 발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대구경북의 정치 편향성이다. 아버지 세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또 사라지고 있지만, 정치적 편향성은 2017년까지도 대구경북에서는 불멸이다.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TK의 투표결과를 분석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13대 대선 때 경북에서 28%의 지지를 얻어 노태우(66%)에 두 배 이상 뒤졌던 김영삼은 14대 때 65%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 반면 15대, 16대 때 경북에서 각각 62%, 73%의 득표율을 과시했던 이회창은 17대 대선에서 73%를 획득한 이명박에 한참 뒤지는 14%를 얻는 데 그친다. 경북의 대선 표심이 후보의 개인적 역량이나 출신 지역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정파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후보가 누구냐보다 TK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후보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음이다.

실제 TK의 대선 표심은 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진영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 왔다. 이번 19대 대선에서 자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홍준표에게 절반 가까운 지지를 보낸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역으로 진보당을 대하는 경북의 대선표심에서도 확인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북에서 21.73%의 득표율을 보였다. 15년 전 노무현이 16대 때 얻은 21.65%와 거의 같다. 반(半) 세대가 지나도록 진보정당 후보를 향한 TK표심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얘기다. 참으로 견고하고 무섭다. 선친과 격론을 벌이던 30여년 전, 아버지 세대가 사라지면 달라질 것이라던 확신은 한낱 치기에 불과하게 됐다.

19대 대선 투표일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친정에 갔다가 장모와 언쟁을 벌였다. ‘문재인 찍으면 큰일 난다. 홍준표 찍어야 해’라는 장모의 발언이 발단됐다. 장모의 견해는 대구경북의 60대 이상이 대체로 공유하는 선거 정서다.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것도 아니요, 정치 지향점이 분명해서도 아니다. 그냥 ‘큰일 난다’는 것이다. 사실 설명이 안 되고 분석도 안 된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앞서 지적한 정파적 일관성은 오히려 우연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대구경북이 대한민국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달라고 호소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격정 호소가 먹히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최근 ‘청소년이 뽑는 대통령선거’에서 문 대통령이 3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꼴찌는 3%의 홍준표로 나타났다. 이 선거에서 대구경북 청소년 역시 심상정과 문 대통령에게 1천표 이상을 던졌지만 홍준표에겐 겨우 113표만 안겨 주었다. 지금의 청소년도 한 세대 전의 대학생들이 겪었던 부모와의 정치적 이격(離隔)을 똑같이 실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국정농단으로 치러진 19대 대선. 대구경북은 거센 풍랑을 헤쳐나갈 대한민국호의 선장을 뽑았는가, 아니면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했는가. 선거는 다음 세대를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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