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로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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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9   |  발행일 2017-05-19 제22면   |  수정 2017-05-19
로마제국이 번성한 것은
개방성과 포용성 때문
지금은 세계적 전환기
시작이 반이라는 자세로
국가발전의 지혜 모아야
20170519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기원전 8세기 무렵. 한 무리의 집단이 그리스에서 지중해를 넘어 테베레 강 근처에 자리를 잡고, 3천여 명의 주민으로 작은 도시국가를 건설한다. 이 작은 나라가 강성해져 훗날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시리아 지역까지 지배하게 된다. 바로 로마제국이다. 로마 역사를 전공한 영국의 어느 교수는 몇 해 전 칼럼을 통해 조그만 도시국가가 500년 넘게 유럽을 지배하고 광대한 번영을 누린 원동력으로 ‘포용’과 ‘통합’의 정신이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로마제국은 여성 차별과 엄격한 신분제의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상당히 개방된 사회이기도 했다. 점령국 주민을 노예로 취급한 다른 나라와 달리 정해진 기간 군대에서 복무하면 인종·출신에 관계없이 시민권을 주고, 기존 시민들과 똑같은 혜택을 누리게 했다. 로마인들이 선택한, 새로운 문화와 인재를 로마제국 시스템 안으로 받아들이는 포용적 리더십은 팽창하는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힘이 되었다.

반면 로마가 막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도시국가들이 번성하고 있었다. 강력한 군대, 풍요로운 경제, 발전된 정치·사회제도를 갖춘 이들 나라는 부모가 모두 시민일 경우에만 시민권을 부여할 정도로 순수 혈통을 중시하고, 전쟁으로 점령한 나라의 국민을 모두 노예로 삼았다.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점령국의 문화와 전통은 모두 폐기하고 자신들의 것을 이식하려 했다. 그렇게 몇 세기가 지난 후 이들 도시국가는 모두 로마에 편입되고 만다. 로마제국의 개방성과 포용성이 앞서 융성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까지 품어버린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전환기에 들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포용적 성장정책을 통한 양극화 해소를 주문하고 있다. 독일, 일본, 미국 등 각국은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선점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리도 포용과 통합의 정신으로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만들어 강하고 따뜻한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나서야 한다.

먼저 과거에의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상처가 있었다면 하루빨리 바로잡아 새살이 돋게 하고,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의 흉터’를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과거의 것들 중에서도 좋은 것은 더 발전시키고 생각이 다른 부분도 충분히 곱씹고 흡수해서 더 큰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한 세대, 두 세대 앞을 내다보면서 국가의 영속성을 이어나갈 장기적 국가 발전 청사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깊어지는 양극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무한경쟁이라는 삼각 파도의 한복판에 우리가 서 있음은 굳이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북핵·미사일을 포함하여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대내외 정책환경과 경제·사회구조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나라를 온전히 보전하고 미래 세대에 더욱 발전된 모습을 물려주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국가의 비전과 전략의 성공 여부는 국가재정의 충실한 운용에 달려있고, 그 기반에는 재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30년 전 폴 케네디는 그의 책 ‘강대국의 흥망’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는 ‘재정과 예산을 마련해 주는 생산적인 경제 기반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선 공약들을 다시 꼼꼼히 살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준비에 소홀한 점은 없는지, 처음 의도한 바대로 실제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지, 재정적 고려가 부족하여 나중에 국민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게 될 염려는 없는지 등 냉철하게 점검해야 한다. 국정기획자문위가 공약 중 옥석을 가려 국정과제로 당장 추진할 것과 중장기 추진과제를 분류할 계획이라 하는데, 참 다행스럽고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진정한 개혁과 따뜻한 통합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술 밥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국가발전을 위하여 동서고금의 현인들로부터 지혜를 모은다면, 태산 아니라 준령이라도 거뜬히 옮길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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