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문재인의 탕평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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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0   |  발행일 2017-05-20 제23면   |  수정 2017-05-20

국어사전엔 탕평을 ‘싸움·시비·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어원을 살펴봐도 그 뜻이 다르지 않다. 탕평(蕩平)은 중국 한나라 때의 경전 상서(尙書)의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이란 말에서 유래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왕도가 넓고 공평하게 펼쳐진다는 의미다.

조선시대 탕평책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인물은 숙종 때의 문신 박세채이며, 탕평정치를 실현한 왕은 영조다. 영조는 영의정에 노론을 앉히면 좌의정은 소론을 중용하는 식의 권력 안배를 통해 정국의 균형을 이뤄나갔다.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우고 수라간에 지시해 여러 재료가 고루 들어간 탕평채라는 음식을 선보이도록 했다. 영조가 탕평에 얼마나 심혈을 쏟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은 정부 출범 초기여서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겠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탕평정치도 평가할 만하다. 고위 공직자 인사에도 ‘탕평’이 확연히 묻어난다. 친문(親文)보다 비문(非文)을 중용하고 능력과 전문성을 우선 고려했다는 게 탕평의 방증이다. 이호철·양정철·최재성 등 문재인정부의 ‘개국공신’들이 2선 후퇴를 선언하며 문 대통령에게 탕평의 공간을 열어주는 모습도 신선하다.

탕평이 인사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정책 탕평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진보 성향의 문재인정부도 필요에 따라서는 시장친화 정책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대탕평과 국민통합으로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분열과 갈등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책 탕평으로 평가받던 경제민주화는 팽개쳐 버리고 인사는 주로 수첩에 의존했다. 능력이 있어도 정체성이 다른 인물은 아예 원천 배제했다. 인사 탕평·정책 탕평을 실천했더라면 박근혜정부가 이토록 참담하게 실패하진 않았을 터이다.

탕평 인사는 인재 등용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정책 탕평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인다. 탕평이 국민통합에 촉매가 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점에서 ‘탕평’은 문재인정부 5년 내내 지켜나가야 할 화두가 아닐까 싶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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