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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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2 07:41  |  수정 2017-05-22 07:41  |  발행일 2017-05-22 제15면
[행복한 교육]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본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부터 죽어도 안 된다던 일들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날마다 목격하며 살고 있다. 이런 경우를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하긴 그 한순간이 그냥 쉽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80% 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기간을 힘들어하며 고통과 분노를 참아내며 버텨왔던가. 지난 열흘 넘는 기간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너무 많지만 나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렸던 제창, 어떤 이들은 떼창이라고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장 인상 깊다. 가장 보수적인 땅이 되어버린 대구·경북의 시장과 도지사도 크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중계되었다. 나도 수업만 아니면 광주 망월동에 가서 목청껏 부르고 싶었다. 교실에 남아 조용하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가 나의 삶이 떠올라 그만 울어버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나도 그랬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하느님 앞에서 기도했고, 수많은 사람들과 동지가 되었고, 어떤 사욕도 버리고 오직 원칙과 목적을 위해 일하자고 했던 맹세를 지키고 있는가.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사실 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향우회를 비롯해 수많은 학교 친구들이 있지만 어느새 나는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니 멀어지면서 이 길을 걸어왔다. 참 외롭고 아팠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기는 한 것일까. 정말 언젠가는 그날이 올까라는 의심이 든 날이 수없이 많았다.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그렇게 교육노동운동을 해 왔지만 학교에서 쫓겨 나야 했고, 한참 후배들마저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었지만 나는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평교사로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적 권위가 없고 나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솔직하게 버겁다. 그래서 그만 교직을 떠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만 조용하게 내 반 아이들이나 가르치며 살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몰려온다. 혼술도 늘고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 시인의 시는 나이가 들 만큼 든 내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그래 할 만큼 했다. 이제 너도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후배들에게 맡겨라. 선배가 부담이 됩니다. 아니, 왜 후배들을 키우지 않았나요? 세월은 그렇게 흘러왔다. 정말 산천은 알아줄까? 정말 내 노력과 희생은 강아지똥이 거름이 되었듯 민들레로 피어날까?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가르치면서 생각한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을 걸어 왔다. 힘들다. 멈추고 싶었다. 다시 마음을 추슬러 본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1984년인가 처음으로 YMCA강당에서 열린 5·18사진전을 가 보았다. 처참한 주검들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학도호국단 철폐, 총학생회 부활을 경험했다. 87년 6월 항쟁과 전국노동자대투쟁은 힘들었지만 감격시대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나는 민주정부와 싸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웠다. 뒤늦게 김해 봉하마을을 다녀왔다. 그리고 보수정권 9년을 보내는 중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태블릿PC가 다윗의 작은 돌이 되었다. 촛불은 마침내 감격스러운 새 정부를 만들어 냈다. 지난 열흘 동안의 모든 일은 감격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다가 상담전문가인 아내의 밥줄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깨어나서 외치는 수천만 국민들이 주권자로 우뚝 서고 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그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은 깃발을 부여잡고, 깃발이 찢어지고 빼앗기면 깃발을 다시 만들어 세우며 살아왔다. 희망이 실망으로, 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일들이 허다했지만 앞서서 나가는 지도자와 동지가 있고 벗들이 있어서 모두들 지금 여기에 서서 이 감격을 만끽하고 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하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여기에서 싹튼 감격이 자라고 무성해지고 꽃피우고 열매를 온전하게 맺게 하는 일이 생각하면 첩첩산중이다. 그 일에는 또 누군가 앞서서 나가야 하고 산자로 살아 있어야 하고 그 길을 따라나서야 한다. 또 어떤 고난과 슬픔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른다면, 주먹을 내려놓고 두 손 꼭 맞잡고 부른다면 다시는 다시는 서러운 날이 오지 않고 꽃길을 갈 것이라 꿈꿔본다. 쓰러져도 걱정은 없다. 아, 기분 정말 좋은 세월이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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