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보수, ‘궤멸’되기 전에 ‘자멸’의 길로 가려는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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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2   |  발행일 2017-05-22 제30면   |  수정 2017-05-22
새 정부의 적폐청산 시동에
도마위 생선된 보수 정치권
제 처지 모르고 당권투쟁만
청산되기 전에 파산할 지경
與 독선 방치하면 역사에 죄
20170522

5·9 대선에서 보수후보(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새누리당 조원진)를 찍은 유권자는 1천만명이 넘는다. 700만표 가까이 받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자 중에서도 중도보수 유권자가 상당수 포함된 걸로 추정된다. 모두 합치면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1천342만여명과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희비가 갈렸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후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양쪽 지지층의 희비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이긴 쪽에선 계속 기쁨을 즐긴다. 문 대통령이 초반 인사와 행보에서 파격을 일으키며 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제대로 찍었다”는 환호가 들린다. 반면 진 쪽에선 여전히 비애를 느낀다.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정권을 내준 보수정치권이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긴커녕 자중지란에 빠져드는 까닭이다. “제대로 찍은 게 맞나?” 하는 탄식이 들린다.

한국당은 반성의 시간 없이 당권투쟁에 들어갔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미국에서 페이스북 정치를 하며 당내 친박계를 박멸해야 할 ‘바퀴벌레’로 규정했다.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이 참 가증스럽다”고 했다. 그럼 선거 기간에 “대선 때는 지게 작대기도 필요하다. 편을 갈라선 안된다”며 친박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해제한 건 뭔가. 홍 전 도지사의 ‘변심’에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제정신이냐. 낮술 드셨냐”고 받아쳤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친박은 제발 나서지 말라”며 설전에 끼어들었다. 이에 홍 의원은 “정우택, 친박 아니라는 건 소가 웃을 얘기”라고 했다. 세 사람 모두 패장가(敗將家)의 남아 있는 유산찌꺼기라도 물려받아 정치를 계속하려고 몸부림친다.

보수의 참패가 예상된 대선이 끝나면 원래 한 뿌리인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털어낼 건 털어내고 다시 합쳐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자리잡을 거란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선거 때 바른정당 의원 13명의 한국당 복당 파문이 일어나면서 루비콘강을 건넜다. 복당파인 김성태 의원이 “바른정당은 최순실 면피용 정당, 피란처”라고 하자, 잔류파인 박인숙 의원은 “이 들쥐 같은 인생아!”라고 했다. 바른정당 일각에선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과의 합당을 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로선 보수정치권의 전열 재정비는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적폐청산특위가 가동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수사와 세월호 사고 재조사도 진행될 태세다.

선거 때 이해찬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극우 보수세력을 궤멸하고 20년 장기 집권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누렸던 세력은 지금 도마에 오른 생선이다. 그럼에도 제 처지를 모르고 정치생명을 이어가려고 발버둥친다. 1천만명이 넘는 보수유권자의 실망감·자괴감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러다간 청산(淸算)을 당하기 전에 파산(破産)할지도 모른다. 궤멸(潰滅)을 당하기 전에 자멸(自滅)할 것만 같다. 그건 보수의 파괴를 넘어 국가와 전체 국민의 불행이다. 새가 두 날개로 날지 못하면 뒤뚱거리다가 추락한다. 보수의 조직적인 견제를 받지 못하면 진보정권은 독선으로 독주한다. 향후 20년 동안 나라 전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도 있다. 보수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진보진영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활로를 찾는 원탁회의라도 보수에서 열어야 할 판이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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