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가출 청소년 어디로 가야 하나] <상> 25세 되면 규정상 쉼터서 거주 못해…“갈곳 노숙자 쉼터 뿐일 것”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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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3   |  발행일 2017-05-23 제6면   |  수정 2017-05-23
가정에서 올바른 돌봄 못 받아
사회성 떨어져 보호기관 전전
직장 얻어도 대부분 그만 둬
30%가량은 지적 장애로 추정
전문적인 자립지원 체계 필요
여러 사정으로 집을 나서 거리로 나온 아이들에게 청소년 쉼터는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하지만 청소년 쉼터에 머물 수 있는 나이는 24세까지다. 그 전에 자립해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청소년 쉼터에서 음악을 배우고 있는 입소자들. <대구시 청소년(여자) 단기 쉼터 제공>

청소년 쉼터는 가출 또는 아동복지시설에서 나와 갈 곳 없는 9~24세 청소년들을 단기간 보호하는 곳이다. 입소 연령이 24세까지인 이유는 청소년기본법에 따른 것이다. 엄연한 성인이지만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탓에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25세가 되면 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쉼터는 20대 입소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학업 및 직업훈련 등을 위주로 지원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안이지만 완벽한 방책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비행의 길에 접어들어 범죄에 노출된 이들이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가출 청소년을 위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살펴봤다.

◆가출 청소년이 성인이 되면

지난해 12월 대구시 중구 종로1가 ‘대구시 청소년(여자) 단기 쉼터’에 입소한 A양(21). 성년이지만 청소년 쉼터에서 6개월째 보호받고 있다.

A양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탓에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중학생이 됐을 무렵, 아버지가 재혼해 꾸린 가정에 돌아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 나왔다. 가출을 반복하던 A양은 지역의 청소년 보호기관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청소년 보호사의 설득으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내 그만뒀다. ‘가출팸’(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만든 생활 공동체)에서 지냈던 A양은 지난해 겨울, 이곳에서 나와 청소년 쉼터 문을 두드렸다. 쉼터에서 일자리를 구하던 A양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하지만 한 달 반 만에 잘렸다. 10여 일밖에 출근하지 않은 데다 계산도 매번 틀려 업주가 난색을 보였기 때문.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A양은 취업할 의사가 그다지 없다. A양의 담당 청소년 보호사는 “A양이 청소년 쉼터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크다. 학자금 대출과 통신요금 체납 등으로 빚만 600만원 가까이 되기 때문에 서둘러 취업을 해야 하는데 자립의지가 약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A양의 사례처럼 최근 들어 대구지역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는 20대가 늘고 있다. 22일 대구시 청소년 단기 쉼터에 입소한 가출 청소년은 모두 9명으로, 이 중 20대 이상은 4명에 이른다.

20대 이상 입소자는 2015년까지는 거의 없었지만 이듬해부터 크게 늘고 있다고 쉼터 관계자는 설명했다. 입소자의 연령을 만 19세 미만 청소년으로 제한한 달서구 단기청소년(남성) 쉼터와 성매매피해 청소년 보호시설 수지의 집(여성)을 제외한 나머지 청소년 쉼터와 보호시설의 사정도 비슷했다.

대구시 일시청소년쉼터는 20대의 입소 문의 전화가 많이 오는 편이다. 한 달 전에는 입소자 대부분이 20대이기도 했다. 대구시 중·장기청소년 쉼터는 정원 6명 가운데 3명이 20대다. 대구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일시보호소의 경우에도 종종 20대 입소 문의가 온다. 대구시교육청이 설립하고 대구YMCA가 운영 중인 24시간 위카페도 20대 가출 청소년들의 이용이 잦다. 입소 기준을 법적 처분받은 청소년으로 규정한 대구자립생활관의 경우 정원 16명 가운데 20세 이상은 11명이며, 가장 나이가 많은 청소년은 22세다. 20대 이상 청소년의 입소자가 없는 곳은 대구시 중·장기청소년(남성) 쉼터밖에 없었다.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는 20대 청소년이 늘어나는 까닭은 어릴 때부터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던 아이들이 성인이 돼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정에서 온전한 돌봄을 받고 성장하지 못한 탓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청소년 보호기관을 전전하는 것이다. 청소년 쉼터는 만 19세 미만을 우선적으로 입소시키도록 규정돼 있다.

강찬수 대구시 청소년(여자) 단기 쉼터 소장은 “지난해 8개월 가까이 쉼터에 머물렀던 22세 여성 2명이 구미 공단에 취업한다고 퇴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틀 만에 그만두고 나와 다른 청소년기관에 입소하더라. 이 아이들은 최대 2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중장기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더라도 25세가 되면 규정 때문에 퇴소해야 할 것이다. 이후에 그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노숙자 쉼터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류명구 <재>대구청소년지원재단 경영기획실장은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돼도 정신적으로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다. 청소년기가 연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정을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고, 이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기관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구에는 가출 청소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국가기관은 없다. 청소년 쉼터에서 가출 청소년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보호하면서 주거·상담·학업 등을 지원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취업 알선까지 도맡아 하기에는 버거운 실정이다.

강 소장은 “입소자의 30%가량은 정서적 장애 또는 경계급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24시간 입소자를 돌보는 체계로 쉼터가 운영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적인 자립지원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청소년 쉼터=가출 청소년의 일시보호 및 숙식 제공, 상담·선도·수련활동, 학업 및 직업훈련 등을 지원한다. 가출 예방을 위한 거리상담지원활동도 펼친다. 머무는 기간에 따라 일시(24시간~일주일), 단기(최장 9개월), 중·장기(최장 4년) 등으로 구분된다. 대구에서는 총 11곳의 청소년 쉼터와 관련 보호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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